성폭행 피해자, CNN서 검거 호소 … 19년 만에 범인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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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때 성폭행을 당했던 제니퍼 슈잇이 1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디킨슨시 경찰서에서 눈물을 흘리며 19년 만에 성폭행범이 체포된 것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미 언론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했던 슈잇은 이날도 당당히 연단에 섰다. [디킨슨 AP=연합뉴스]

여덟 살 소녀를 성폭행한 후 중상을 입혔던 ‘미국판 조두순’이 19년 만에 붙잡혔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최근 방송에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며 범인 체포를 호소해 화제가 됐다.

1990년 8월 10일 밤 미국 텍사스주 디킨슨시의 한 아파트, 당시 8세 소녀 제니퍼 슈잇은 아파트에서 홀로 엄마를 기다리다 잠들었다. 이때 한 20대 남자가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슈잇을 집 앞 주차장으로 데려간 후 임무 수행 중인 경찰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슈잇에게 “저 달을 보렴. 달의 색깔이 바뀌면 네 엄마가 올 거야”라고 안심시킨 뒤 “(달의 색깔이 안 바뀌었으니) 엄마가 안 오려나보다”며 근처 야산으로 끌고 갔다.

남자는 슈잇을 성폭행한 뒤 흉기로 목에 상처를 입혔다. 슈잇은 발가벗겨진 채 야산에 버려졌다. 실신했다가 깨어난 슈잇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성대가 손상돼 소리가 나지 않았다. 12시간 만에 발견돼 병원에 후송됐고 3일 후에야 의식을 되찾았다. 의사는 “성대 손상으로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가 남긴 속옷과 셔츠를 발견해 DNA를 추출했지만, 샘플이 적어 당시 기술론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슈잇은 그 뒤 수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27세가 된 슈잇은 지난달 CNN 방송에 출연했다. 미국 언론들도 한국처럼 성폭행 피해자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슈잇은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 19년간 잊지 못했던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결코 희생자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회복 불능이라던 성대는 어느덧 정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는 “이 문제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매일 밤 잠드는 어린 소녀들에 관한 문제”라며 자신을 ‘투사(fighter)’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범인 앞에서 ‘내가 이겼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13일 범인 데니스 얼 브래드퍼드(40)를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체포했다. FBI는 19년 전 확보했던 범인의 DNA를 첨단 장비로 다시 분석한 뒤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유사 사건 범죄자들의 DNA와 비교했다. 그 결과 1996년에 유사 수법의 범행을 저질러 3년 간 복역했던 브래드퍼드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범인은 부인과 두 자녀, 3명의 의붓자녀를 둔 용접공이었다. 그는 90년 당시 슈잇의 집에서 약 3.2㎞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사건을 해결한 FBI 요원 리처드 레니슨은 “유아 성폭행 피해자는 대부분 숨어버린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수사에 도움을 준 것은 이번에 처음 겪은 일”이라며 슈잇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이날 슈잇은 수사 결과 발표 현장에 남자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그는 “재판까지 이 사건의 끝을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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