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린튼家의 한국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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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는 미국인 호러스 앨런이다. 앨런은 1884년 9월 22일 미국 공사관 공의(公醫)자격으로 서울에 왔다.

그후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왔으며, 이들 가운데는 한국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도 많다.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엔 5백70여명 선교사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

특이한 것은 한국에 와서 1세기 넘게 살면서 '선교사 집안' 으로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경우다.

1885년 4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돼 서울에서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경신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호러스 언더우드에서 비롯된 언더우드가(家)는 5대째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다.

또 다른 선교사 집안 린튼가는 189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유진 벨에서 시작된다. 벨은 나주.목포.광주 등 주로 전라도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교회를 세웠다. 이 공로로 '전라 선교의 개척자' 란 칭호가 붙었다.

벨은 같은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윌리엄 린튼을 사위로 삼아 선교사 집안의 대(代)를 이었다.

린튼은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린튼은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거부, 신흥학교가 폐교당하기도 했다.

린튼의 아들 가운데 3남 휴와 4남 토머스는 부친의 뜻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순천과 광주에서 각각 농촌선교에 종사했다.

휴의 부인 루이스는 순천에서 기독결핵재활원장으로 40년간 봉사한 공로로 제6회 호암상(湖巖賞)을 수상했다. 아들 스티븐과 존 형제는 스스로 '전라도 토종' 임을 자랑한다. 두 사람은 연세대 동문(同門)으로 형은 철학과, 동생은 의과를 졸업했다.

두 사람 모두 한국 여인과 결혼했다. 서양화가 김원숙씨가 스티븐의 부인이다. 스티븐은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 한국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존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린튼 형제는 지난 95년 외증조부의 한국 선교 1백년을 기념해 유진 벨 재단을 세웠다. 유진 벨 재단은 북한에 구호식량을 보내고 결핵퇴치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스티븐은 지난 79년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처음 북한을 방문한 이래 30여차례 북한을 다녀왔다. 유진 벨 재단이 지금까지 북한에 전달한 물품은 식량 8천t.결핵검진차 5대.결핵약 1만2천명분에 달한다.

지난 26일 밤 KBS-TV에서 방영된 '일요스페셜-린튼 형제의 북한돕기' 는 감동적이었다.

"4대를 한국에서 살다보니 남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북한의 형제가 아픈데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린튼 형제의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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