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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31.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지난 84년 한국영화아카데미가 태동할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 자체의 위상은 실로 미미했다. 더구나 영화는 예술로 간주되기 보다 단순 오락거리로 치부된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자신들의 영화인생을 꿈꾸기 위해 1~2년 동안을 피땀어린 창작에 몸을 던졌다.

그 결과 15년이 지난 지금, 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은 한국영화계의 중추로 거뜬히 성장했다.

특히 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는 이들의 합류로 더욱 가속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그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우선 산학연구기관으로서의 독특한 위상을 무시할 수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옛날 영화진흥공사)의 부속기관으로서 교육과정 중 촬영.조명기자재 및 세트장 등을 맘껏 활용, 재학 당시부터 일찍 현장감을 체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론에 치중하는 일반 대학의 영화과와 비교해 철저히 창작 위주로 진행되는 학사일정도 장점이다.

초기 시놉시스(작품구성안)구성단계에서부터 막히면 결론을 볼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특유의 장인정신이 여기서 비롯됐다.

그러나 새 천년을 앞두고 영화아카데미는 기로에 서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없지 않기 때문. 역사가 쌓이면서 이에 반비례해 실습기자재는 퇴화했고, 개원 당시보다 입학정원이 꼭 3배(36명)로 늘었지만 교육예산은 제자리 걸음이다. 교수 및 전문요원의 확보도 적정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무리 영화가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많이 받는 시대라 해도 결국 승부처는 맨파워다. 그간 영화아카데미가 배출한 인력들의 활약상이 이를 입증한다. 어려운 여건을 아랑곳하지 않고 매년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이 영화아카데미를 찾고 있다.

이걸 보면 우리 영화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바로 그들이 다음 세기의 주역이다. 정부나 영화인 모두 영화아카데미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실정이다.

황규덕(한국영화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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