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국50주년] 5. 농가 생산책임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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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늦더위가 남아 있던 지난 4일. 베이징 (北京) 역에서 남으로 달린 기차는 12시간만에 안후이 (安徽) 성의 성도 (省都) 허페이 (合肥)에 도착했다.

승용차로 바꿔타고 3시간 가량 가니 펑양 (鳳陽) 현이다.

또다시 포장.비포장 도로가 번갈아 나타나는 시골길을 1시간 정도 더 가야 샤오강 (小崗) 촌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78년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공동 생산.분배라는 인민공사 체제를 거부한 것이다.

대신 농지를 가구별로 나눠 경작하자는 농가청부 생산책임제를 도입했다.

당국의 허가는 없었다.

발각될 경우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남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자식을 맡아 키워주기로 서로 약속했다.

"가난할수록 담은 자꾸 더 커집디다" .반란을 주도했던 옌진창 (嚴金昌.56) 은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며 20여년 전을 회상했다. "이대로 굶어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타지로 식량을 구걸하러 나간 두 가구를 뺀 마을의 열여덟 가구 가장들이 모였습니다. "

78년 11월 24일 밤의 일이다.

경자유전 (耕者有田) 의 이상을 실현시킨 공산혁명의 단맛도 잠시. 58년부터 불어닥친 집단소유화 바람인 인민공사는 농민들의 의욕을 송두리째 꺾어버렸다.

"게다가 한해는 홍수, 다음해는 가뭄식으로 10년 가까이 자연재해가 잇따라 펑양현은 안후이성에서 가장 못사는 곳이 됐습니다. " 펑양현 쉬충화 (徐崇華) 부현장의 설명이다.

59년과 61년 사이 샤오강촌의 촌민 1백75명 중 60여명이 굶어죽었다.

78년 또다시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내년엔 몇가구나 살아남을까. 그날 밤의 비상회의는 그런 절박함 속에 열린 것이다.

펑양현 출신의 명 (明) 태조 (太祖) 주원장 (朱元璋) 은 6백년 전 굶주림에 분노한 농민군을 조직,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샤오강촌의 반란은 "6백년만의 반란" 으로도 불린다.

당시 안후이성 당서기 완리 (萬里) 는 이 일을 덩샤오핑 (鄧小平)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鄧은 '지켜보라' 고 했다.

당국의 묵인 아래 시작된 농가청부 생산책임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이뤄냈다.

78년 3만2천5백㎏이던 샤오강촌의 양곡생산은 97년 60만㎏으로 18배가 증가했다.

촌민 1인당 소득은 당시 중국 농가 평균소득 (1백34위안) 의 6분의1도 안되던 22위안이었다.

이것이 97년엔 2천5백위안 (중국 평균 2천90위안) 으로 껑충 뛰었다.

"78년 당시 마을 전체의 농기구라곤 소 세마리와 써레 하나가 전부였죠. 이젠 트랙터 등 없는 게 없습니다. 집엔 냉장고.TV.세탁기 등 웬만한 가전제품은 다 있죠. " 옌진창은 넉넉한 웃음을 띠었다.

샤오강촌의 성공은 바로 鄧이 주창한 개혁.개방의 시발점이 됐다.

鄧은 생산력 향상을 앞세워 전국적으로 인민공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 (毛澤東) 이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한다' 는 전략으로 장제스 (蔣介石) 와의 내전에서 승리했듯이 鄧은 그의 경제개혁을 농촌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장쩌민 (江澤民) 주석이 이 마을을 찾았다.

농민 숫자대로 토지를 분배받아 일정 양의 양식을 국가에 바치고 남는 것은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농가청부 생산책임제. 江주석은 이를 30년 가량은 더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농민들에게 맡긴 농지를 한동안 회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인민공사가 해체되며 2억5천만명이었던 농촌의 절대빈곤 인구는 98년 4천2백만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아직도 4천여만 농민의 밥그릇은 비어 있다.

또 9억의 농민 중 1억6천만명 가량이 남아도는 인력이다.

도시와 농촌간의, 또 농촌 내부간의 빈부차도 큰 문제다.

97년 농촌의 1인당 소득은 2천90위안이었으나 도시는 5천1백60위안이다.

따라서 농촌의 유휴인력들이 무작정 대도시로 상경하면서 여성들은 유흥가로, 남성들은 범죄조직에 가담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78년 3억7백44만t이던 중국의 식량생산도 97년 4억9천4백17만t으로 늘었다.

중국 지도자들은 '세계 7%의 경작지로 세계인구의 22%를 먹여살리고 있다' 는 자랑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인구증가에 따라 식량증산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중국의 1인당 양곡 소비량은 연 3백85㎏. 따라서 앞으로 인구가 16억명으로 치솟으면 6억t 이상의 식량이 필요하다.

지금도 중국의 어느 마을에선가 또다른 반란이 준비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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