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듯한 북한 … 반기는 중국 … 신중한 한·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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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오른쪽에서 첫째)이 10일 밤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오른쪽 둘째),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왼쪽 첫째)과 회담을 하고 있다. 후 주석 맞은편에 이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날 오전 원자바오 총리가 참석한 한·중·일 정상회의에선 테이블을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했었다. 정부 당국자는 “후 주석과의 면담은 당초 일정엔 없었으나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후 첫 중국 방문이라는 이유로 후 주석과의 회담을 요청했다”며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 중국 측이 세 사람이 함께 만나자고 해 간이 정상회담 형식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 나온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입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렸다. 그는 닷새 전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회담하고 온 당사자였다.

원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을 (2박3일 동안) 10시간 만났다”고 소개한 뒤 “북한이 (미국은 물론) 한국·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원하더라”고 전했다. “이번 방북에서 얻은 가장 큰 느낌”이라며 특별히 무게를 실었다. 대화를 하자는 김 위원장의 공세가 전방위에 걸쳐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는 그만큼 현재의 ‘대치’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키려는 북한의 의지가 강함을 뜻한다. 핵 실험과 재처리 시설 가동 등으로 핵 억지력을 과시했으니 이제는 협상을 통해 챙길 건 챙겨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해 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한국·일본에까지 대화 의사를 밝힌 것은 북·미 양자대화를 앞둔 포석의 의미가 있다. 유화 분위기를 조성해 직접 대화에 반대하는 미국 내 일부 여론을 무마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를 제대로 틀어쥐지 못하면 사라질 수 있다”고 한 원 총리의 발언에선 단순 전달 이상의 중국 측 메시지가 들어있다. 원 총리는 “6자회담과 양자대화가 모순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도 했다. 활발한 양자대화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북핵 협상을 재개시키려는 중국의 의중이 읽혀진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항상 열린 마음으로 있다”며 “북한에 그랜드 바긴(일괄타결)을 설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나는 것의 목표는 핵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핵 포기 준비가 됐을 때 북한이 원하는 협력을 할 수 있다” 는 말을 잊지 않았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않겠다는 종전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은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북·미 양자회담 준비가 돼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실제 대화에 나설 대표단의 지위와 의제 수준에 대해선 방침을 확정하지 못했다. 요컨대 6자회담이 최종 해결의 장이 돼야 한다는 데에는 관련국들의 인식이 일치하면서도 그 중간 단계로서의 양자회담을 보는 셈법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관련국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감지된 건 ‘그랜드 바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원 총리는 회담장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한국의 노력을 평가한다. 개방적 태도로 적극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자는 그랜드 바긴을 ‘대교역’이라 부르며 관심을 표명해왔다고 한다. 이는 보다 명확한 어조로 적극적 동의를 표시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발언과는 확연한 온도 차가 느껴진다.

하토야마 총리는 한술 더 얹었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포괄적 협상안에 포함돼야 함을 다시 못박은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해 양해를 표시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인권 문제를 포괄적 협상안에 포함시킨다는 방안을 갖고 있다고 외교 당국자는 전했다. 하지만 핵 협상만 해도 첩첩산중인데 해법 도출이 힘든 납치·인권 문제까지 한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협상은 더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그랜드 바긴의 기본 철학이 모든 현안을 한꺼번에 타결 짓자는 것이고, 북핵 문제의 종착지에는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가 포함된다”며 “힘은 들더라도 이런 문제도 협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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