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예술 70년사'展 "작품이냐 상품이냐"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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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병석에 누운 운보 (雲甫) 김기창 (金基昶) 화백이 한 전시회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문제의 전시는 갤러리 종로아트 (관장 박정수) 주최로 열리고 있는 '운보 김기창 예술 70년사' .청각장애를 딛고 대가로 성공한 이 입지전적 인물의 화력 (畵歷) 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운보의 작품을 복제한 디지털 판화를 전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올 한해는 운보에게 '수난의 해' 였다. 장남이 사업 실패 때문에 팔아치운 2백여점의 그림이 로비 의혹에 휘말렸고, 운보 부부의 예술세계를 기념하려 지었던 운향미술관은 소장품 부족으로 폐관했다.

이러던 차에 창작 과정에 운보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복제품을 '70년사' 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 전시하는 것은 판매를 의식한 상업적 전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일주일.열흘씩 전국 12개 전시장을 순회하는 전시 형태도 이 행사가 미술사적 의미를 생각했다기 보다는 운보의 유명세를 탄 '이벤트' 가 아니냐는 비판을 설득력있게 한다.

또 유명 작가의 경우 희소성 유지를 위해 최대 1백~1백50장 정도 찍는 것이 보통인데 비해 출품된 50점 각각 2백80장씩이나 찍은 것도 '작품' 이 아닌 '상품' 의 이미지를 짙게 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판화는 쉽게 말해 붓이 아닌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

갤러리 종로아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예술 작품을 함께 감상했으면 하는 운보의 뜻과 기운찬 필력을 살리는 가장 좋은 길" 이라며 "소장자가 내놓지 않으면 일반 감상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미술 대중화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전시 작품은 운보의 동의를 받아 직계가족이 낙관을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술평론가 C씨는 "이번 운보전은 컴퓨터와 관련 응용프로그램을 배워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디지털 판화 작가들과는 경우가 다르다.

또 아무리 본인이 동의했다고 해도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은 상황이니만큼 가족들이 명예를 고려해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 고 비판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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