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 조훈현9단 발빠른 실리포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처음 32명이 왔으나 절반이 탈락했다. 1차전에서 살아남아 9일 대결하게 된 16명의 고수들은 전날 밤 모두 한 건물에서 잠이 들었다.

그들은 밤새 어떤 꿈을 꾸었으며 어떤 비장의 수를 연구했을까. 계룡산 자락의 숲속에 한적하게 자리잡은 삼성화재 유성연수원. 아침이 밝아오자 저마다 세계 최강자의 야망을 깊숙이 갈무리한 16명의 강자들은 잠을 설친 창백한 얼굴로 대국장으로 모여들었다.

중국의 1인자 창하오 (常昊) 9단이 가장 먼저 대국장에 나타났다. 창하오는 자기 자리에 가서 조용히 묵상에 잠겼다. 그다음 커피 한잔을 든 조훈현 9단과 눈빛이 날카로운 왕리청 (王立誠) 9단, 한복차림의 유창혁 9단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대회 2연패에 빛나는 최강 이창호 9단은 언제 입장했는지도 모르게 자기 자리에 가 앉아 있었다. 맨 마지막으로 올해의 신인왕 김만수 4단이 땀을 훔치며 들어섰고 곧바로 9시30분 정각에 입회인 홍태선 8단의 대국개시 선언이 떨어졌다.

우승상금 2억원, 총상금 6억원의 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선수권대회 본선 16강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10분간의 촬영 허용시간 동안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바쁘게 터졌다.

▶조훈현 9단 - 창하오 9단

46세로 참가기사 중 최고령인 조9단은 23세의 물오른 강자 창하오 9단과 지금까지 네번 싸워 3승1패. 지난해 중국 주최의 춘란배 준결승에서 조9단은 나이 때문에 이제는 밀리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뒤집고 또다시 쾌승했다. 흑을 쥔 조9단은 발빠르게 실리를 취하고 있고 힘좋은 창하오는 두텁게 뒤를 추격 중.

▶유창혁 9단 - 야마다 기미오 (山田規三生) 7단

야마다 7단은 일본의 신인왕으로 떠오르는 별. 2년전 유시훈 7단을 꺾고 왕좌 타이틀을 쟁취한 일이 있다. 두사람은 첫 대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유9단이 흑이 나오자 득의의 중국식 포석으로 초반부터 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창호 9단 - 왕리청 9단

일본의 왕좌 타이틀 보유자 왕리청은 조치훈 9단과 빅타이틀을 놓고 여러번 싸웠으며 지난해엔 유창혁 9단을 꺾고 LG배 우승을 차지했던 실력파. 그가 최강 이창호 9단을 만난 것은 불운이지만 실제 대국에 들어가자 흑을 쥔 왕리청은 포석에서 전혀 밀리지 않으며 오히려 간발의 차이로 앞서가는 형세. 추격의 명수 이9단의 후반 활약을 감안해도 만만치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김승준 6단 - 류샤오광 (劉小光) 9단

중국의 류샤오광 9단은 지난해 이대회에서 조훈현 9단을 물리치더니 올해도 연속해 조치훈 9단이란 대어를 낚았다. 김승준 6단에겐 4전4승. 하지만 이건 옛날 전적이고 김6단은 97년 삼성화재배 4강에 오르는등 상승세여서 힘겨운 대로 좋은 승부가 예상된다. 김6단의 백번.

▶조선진 9단 - 김만수 4단

조선진은 올해 조치훈 9단을 꺾고 일본 본인방 타이틀을 쟁취한 일본바둑계의 신흥강자. 김만수는 올해 한국의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한 신예강호. 객관적인 전력은 조9단이 강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수직상승을 보여온 김만수의 기세는 이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첫 대결. 조9단이 흑으로 실리전법을 펼치고 있다.

▶안조영 5단 - 히코사카 나오토 (彦坂直人) 9단

1회전에서 일본의 강자 요다 노리모토 (依田紀基) 9단을 73수만에 불계로 격파해 파란을 일으킨 20세의 안조영 5단. 상대는 지난해 일본랭킹 4위의 '10단' 타이틀 홀더로 힘이 막강한 히코사카 9단. 중반전까지 빠르게 진행된 현재 히코사카가 백으로 기선을 제압한 형세.

▶강지성 3단 - 야마시로 히로시 (山城宏) 9단

충암고 2년생으로 참가선수 중 18세의 최연소자인 강3단은 1차전에서 일본의 요코다 시게아키 (橫田茂昭) 9단을 격파한 여세를 몰아 일본 왕관위 11회 우승에 빛나는 야마시로 히로시 9단마저 넘보고 있다. 강3단의 흑번. 실리를 차지한 뒤 야마시로의 공격에 맞서 타개에 고심 중이다.

▶가타오카 사토시 (片岡聰) 9단 - 왕레이 (王磊) 9단

기세만 따진다면 중국 6소룡의 한사람인 신예 왕레이 쪽이 돋보인다. 그러나 80년대 일본의 정상급 기사였던 가타오카는 지난해 일본 속기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이미 재기한 상태. 백의 가타오카가 흑에 맹공을 퍼붓고 있으나 실리는 흑이 좋은 형세라 예측불허의 진행을 보이고 있다.

대전 = 박치문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