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일 시노래콘서트…정호승 시 등에 곡붙여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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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세찬 눈보라 속으로 무덤도 없이/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정호승 시.백창우 곡.김광석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 중)

시는 사실 활자로는 맛이 다 나지 않는다.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

아니, 노래로 불러야한다.

본래 시와 노래는 하나였던 것. 시가 온전히 노래가 되는 자리를 위해 가수와 시인이 함께 만났다.

90년대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꼽히는 김용택.정호승.도종환.안도현 4인방과 이들 못지 않게 시적 서정이 넘치는 가수 백창우.김원중.신형원, 여기에 '소리꾼' 장사익과 '컬컬한' 임희숙, 포크그룹 '혜화동 푸른섬' 이 가세한 시인.가수 모임 '나팔꽃' 이 그것이다.

벌써 작년 여름부터 몇 차례 단합대회를 열면서 시와 노래에 본령을 찾아주려고 궁싯거린 이들이 오는 9.10일 오후7시30분 서울 행당동 한양대 동문회관에서 첫 손님맞이를 벌인다.

"작게, 낮게, 느리게" 란 제목이 붙은 '나팔꽃 시노래 콘서트' 다.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에서 공연기획업무를 맡았던 이금로씨이지만, 시인과 가수 서로의 호응이 없었더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터.

"시인과 노래꾼의 만남을 통해 노래는 깊어지고 넓어져야하고, 시는 시집밖으로 걸어나와 대중의 일상에서 새롭게 살아나야 한다" 고 입을 모은 이들은 "꽃씨를 거두며" (도종환 시.백창우 곡) "땅" (안도현 시. 유종화 곡) "우리 뒷집 할머니" (김용택 시.김현성 곡)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시. 류형선 곡) 등 4인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 10여곡을 만들어 이 무대에서 첫선을 뵌다.

무대에는 가수들 외에도 평소 노래방에서 명실상부한 서정 가객 (歌客) 임을 과시해온 시인 안도현씨가 '철길' '먼산' 등 자신의 시를 가수 이지상씨와 함께 직접 부를 예정. 김용택시인이 교사로 근무하는 마암분교학생들은 동요조로 만들어진 김용택시인의 시를 부르는 등 가족관객이 두루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전망이다.

이들이 첫 공연을 갖는 한양대 동문회관은 4백석 규모의 중형 공연장. "이른 아침 햇살에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작고 차분하게 시작하겠다" 는 것이 좌장격인 김용택시인의 말이다.

"오는 11월에는 더 큰 공연장에서 배우들도 '시극' (詩劇) 형태로 참여하는 2차 공연도 준비중" 이란 게 김용택시인의 귀띔. "극단적인 상업화와 아찔한 문명의 속도 속에서 작고, 낮고, 느린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한다" 고 이들은 작고, 낮게 권한다.

공연문의 02 - 708 - 4986.

이후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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