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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레슬링] '정지현 돌풍' 금맥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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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1세 정지현(한체대)이 세계를 들어 메쳤다. 다크호스로 꼽긴 했지만 누구도 그에게 금메달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감격은 더욱 컸다.

정지현은 27일 새벽(한국시간) 아테네 아노리오시아홀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 결승전에서 쿠바의 로베르토 몬손을 연장전 끝에 3-0으로 누르고 한국에 일곱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23일 남자탁구의 유승민(삼성생명) 이후 목말랐던 사흘 만의 금 소식이었다. 전통의 메달밭 레슬링에서의 첫 금이기도 하다.

정지현의 영리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1회전 초반 몬손의 거친 공세를 노련하게 막아낸 뒤 중반 이후부터 공세로 전환했다.

1분14초. 정지현은 소극적인 플레이로 패시브를 당했으나 날렵한 몸놀림으로 버텨내면서 몬손의 공격을 무산시켜 위기를 넘겼다. 이후 정지현은 과감한 공세로 전환, 1분58초 만에 패시브를 얻어낸 뒤 옆굴리기 공격으로 연결해 1점을 따냈다. 이어진 공격에서 정지현은 혼신의 힘을 다한 측면 집어던지기 공격을 성공시켜 추가점을 따냈다. 2-0.

▶ 정지현이 연장 8초 만에 로베르토 몬손에게 허리잡기를 성공시켜 3-0 승리가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아테네=최승식 기자

2회전에서도 접전은 계속됐다. 몬손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정지현은 4분8초에도 패시브를 빼앗겼으나 효과적인 수비로 위기를 모면했다. 승리 결정을 위한 3점에 1점이 모자라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정지현은 연장전 시작 8초 만에 전광석화 같은 허리잡기 역습을 성공시켜 1점을 보태면서 접전을 마무리했다.

정지현은 "1차전부터 힘들지 않은 경기가 없었다. 아직도 금메달을 땄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께 감사하며 한동안 못 만났던 여자친구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현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52㎏)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58㎏급)에서 연거푸 금메달을 목에 건 우승후보 아르멘 나자리안(불가리아)을 준결승에서 3-1로 꺾고 결승에 올랐었다.

그레코로만형을 마친 레슬링은 27일부터 자유형 경기를 시작한다. 한국에선 84kg급의 문의제와 66kg급의 백진국(이상 삼성생명) 등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아테네=특별취재팀

*** 체조·유도 거쳐 유연성·파워 뛰어나

◆ 정지현은=21세 어린 나이지만 과묵하고 겸손하기로 소문난 그다. 평소 큰 경기에 나설 때도 "잘하고 올게"가 전부였다. 하지만 아테네로 떠나면서는 "금메달을 따 올게"라는 말을 남겼고, 그런 그의 말에서 어머니 서명숙(49)씨는 범상찮은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짧은 경력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온 레슬러다. 중3 때인 1998년 레슬링에 입문해 7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국가대표에 발탁된 건 분당 서현고 3년 때. 올림픽 2연패의 스타 심권호의 라이벌이던 선배 하태연을 꺾으면서다. 이듬해 핀란드오픈 55㎏급에서 1위를 했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국내 랭킹 1위 강경일을 누르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정지현의 운동경력은 다채롭다. 안양 석수초등학교 4학년 때 기계체조를 시작했다가 6학년 때부터는 유도로 바꿨다. 4년 가까이 유도선수 생활을 하다가 고교 진학을 앞두고 레슬러가 됐다. 당시 몸무게가 42㎏에 불과해 유도에는 맞는 체급이 없었기 때문.

그의 유연성.파워.순발력은 체조와 유도를 하면서 고루 갖춰졌다는 게 주위의 분석이다.

최준호 기자

*** 아테네 올림픽 특별취재팀
◆스포츠부=허진석 차장, 성백유.정영재.김종문 기자
◆사진부=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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