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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앙숙’ 독일·프랑스 공통교과서로 신뢰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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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외상이 7일 제안함에 따라 한·중·일 공통 역사 교과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슷한 역사·지리적 배경을 가진 프랑스와 독일이 이미 공통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폴란드와 공통 역사 교과서 시험판을 만들기도 했다. 반 독일 성향의 폴란드 우파 세력과 독일이 손을 잡고 하나의 역사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통 역사 교과서는 양국 청소년들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2차 대전 이후 양국이 공식적으로 처음 화해의 손을 잡은 엘리제 조약 40주년을 기념해 2003년 두 나라 청소년 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였다. 이들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떨치고 화해와 통합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일”이라며 공통 교과서 편찬을 제안했다. 당시 양국 정상이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교육부 장관 회담이 열렸으며 양국의 역사학자와 교사, 그리고 출판사 관계자 등이 참가한 실무 대표단 회의가 이어졌다.

첫 번째 작업인 고교 3학년 교과서 ‘1945년 이후 현대사’는 독일 측이 ‘2차 대전 발발 책임’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프랑스 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순조롭게 진행됐다. 물론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평가 부분 등에서였다. 프랑스 측은 2차 대전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다수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소련의 동독 공산 정권 설립, 민중 봉기 유혈 진압 때문에 부정적이었다. 또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해방과 현대사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역할 등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그래도 양국이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큰 전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선 유럽의 수백 년간 전쟁의 주요 원인이었던 민족주의 문제는 최소화한다는 것이었다. 자칫 상처를 건드리거나 감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서였다. 또 역사적 사실을 평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점에도 의견 일치를 봤다. 이런 논의를 거쳐 2006년에 첫 교과서가 출판됐다.

 150여 년 동안의 근·현대사에서 네 번의 전쟁을 경험한 양국이 함께 역사 교과서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60여 년 동안 쌓아온 양국의 신뢰가 바탕이 됐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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