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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9> 지주형 안내표지, 지주는 없애고 정보는 모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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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위는 서울 상도동의 사설 안내 표지(사진 1). 아래는 대안(그림 2).

도시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위치, 방향, 거리 등의 안내정보에 대한 시민들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가로를 따라가며 시설물, 건물, 특정 공간을 안내하기 위한 수많은 지주형 사설 안내표지가 설치돼 있습니다. 개중에는 공공성이 없는 상업정보가 버젓이 독립 지주로 가로에 서 있기도 합니다. 형태·색채·크기도 설치 주체에 따라 제각각인 사설 지주의 범람으로 도시는 무질서해집니다(사진1). 보도에 설치되는 지주형 안내표지는 도로법상 도로시설로 분류되며, 그동안 도로관리청의 허가 아래 점용료만 지불하면 어렵지 않게 표지 주인이 직접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턱없이 저렴한 점용료와 사려 깊지 못한 제도로 인해 거리의 혼란은 가속화돼 왔습니다.

불필요한 정보와 가로시설물을 제거하고 안내표지를 통합하니 안내정보에 대한 주목성이 높아지고, 거리의 모습이 시원스레 드러납니다. 안내표지판은 분리와 부착이 손쉬운 단위 형태로 디자인돼 하나의 지주에 여러 개의 표지판을 나란히 조합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주의 중복 설치를 피할 수 있고, 표지판의 신규 수요에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또 표지판은 장식을 배제하고 색채를 억제하여 어두운 회갈색 바탕에 흰 글자로 가독성을 향상시켰습니다. 건물을 뒤덮은 판류형 간판도 없애고, 상호를 입체문자형으로 바꾸어 질서정연한 공간이 되도록 했습니다. 보도의 포장재를 통일하고, 건물주의 영역과 보도와의 경계를 녹지로 자연스럽게 구분하며, 시설물이나 단차로 인해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했습니다(그림2).

지자체는 사설 지주표지를 공공성을 기준으로 심사해 선정하고, 자체적으로 설치 관리해야 합니다. 사설 지주의 신규 설치는 최대한 억제해야 하고, 안내표지는 가로등·신호등의 기둥에 통합 설치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정보는 모으고, 거리는 비워나가야 합니다. 도시는 쉽게 읽혀야 합니다. 일관된 디자인의 안내표지를 설치하면 시민들은 어디서나 쉽게 안내표지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권영걸 서울대 교수 ·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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