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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할까? 빌릴까? 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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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글로벌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과거 기술로는 버틸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정부고 기업이고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기술개발에 나선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성공 확률이 대단히 낮은 게 현실이다. 미국의 3M에 따르면 기술개발을 통해 시장 진입에 성공할 확률은 불과 1~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을 얻는 방법은 세 가지다. 모든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할지, 남이 가진 기술을 빌려 쓰고 기술 사용료를 지불할지, 아니면 남의 원천기술을 통째로 살 것인지다. 이는 항상 중요한 의사결정 문제로 다가온다.

먼저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기술개발에는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십 년, 또는 그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장시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시장에서 수요자들의 구매로 이어지기까지는 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소비제품이면 한두 달 사이에 시장에서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수도 있지만, 산업제품은 그렇지 않다. 발전소처럼 기계 수명이 40~50년이 되는 경우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라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을 빌리면 어떨까. 때로는 관련된 특허나, 한정되긴 하지만 시장을 함께 넘겨받는 경우도 있어 비교적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후속 기술이나 개선된 기술도 계속 공급받을 수 있다면, 원천기술 소유자에게 영구히 종속되는 단점이 있지만 시장에서 안착은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 소유자의 마음에 따라 하루아침에 시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할 터이다. 매년 지불하는 기술 사용료를 몇 년간 모아보면 자기가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치르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리되면 돈은 돈대로 들이면서 너무 쉽게 기술을 도입했다는 여론의 비판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우리가 빌려온 기술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휴대용 전화와 관련된 기술이다. 미국의 퀄컴이라는 회사가 개발한 휴대용 전화의 CDMA 원천기술을 우리가 도입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알려지기로는, 이 기술을 도입한 이래 50억 달러에 가까운 기술 사용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술 도입을 얘기할 때 곧잘 CDMA 기술을 예로 들며 왜 그렇게 많은 비용이 나가야 하는지 질타하기도 하고, 원천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도 저도 마뜩지 않다면, 마지막으로 기술을 통째로 사는 방법이 있다. 원천기술을 가진 쪽은 자기들의 캐시 카우(cash cow)를 쉬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원천기술을 사오려면 항상 상당한 대가를 쥐여줘야 한다. 그렇지만 기술을 사오면 상표와 시장을 한꺼번에 가져오기 때문에 큰 장점이 있다.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확실히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돈 들여서도 키우기 힘든 기술자를 일거에 품에 안을 수 있는 것도 큰 과실이다. 앞서 예로 든 휴대용 전화의 원천기술인 CDMA기술도, 우리가 초기에 통째로 사왔다면 10억 달러 이하면 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그때는 그 누구도 CDMA의 장래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에 빌려왔고, 그 결과 대가를 톡톡히 지불한 것이다.

최근 고유가와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 개발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면서,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 관련 원천기술을 가진 웨스팅 하우스라는 회사는 몇 년 전 54억 달러에 일본 도시바로 팔려갔다. 웨스팅 하우스의 다른 사업부와 같이 팔려갔기 때문에 원자력 기술만 따져보면 20억 달러 정도에 넘어간 셈이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이 화석연료를 대체할 사실상 유일한 방법으로 떠오르며, 앞으로 전 세계에서 300조원의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20억 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나, 300조원 규모의 시장이 눈앞에 펼쳐지니 그때 사오지 못한 게 우리에겐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기술개발에 돈을 대주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좋은 원천기술이 있는 회사를 통째로 우리나라 것으로 만들면 더 빠르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쪽으로 눈을 돌려, 더 적극적인 방법을 검토해야 하리라고 본다. 특히 우리 산업이 득 볼 수 있는 원천기술이라면 정부가 나설 때가 되었다.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