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감상노트-연극] 서울연극제 가슴 설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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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그 무덥고 잔인한 여름을 보내고 해마다 가을이 오면 나는 마음이 설렌다. 그건 더위를 식혀주는 한줄기 소나기 같은 문화의 향연, 바로 서울연극제 때문이다.

경연제로 펼쳐지던 예년과 달리 페스티벌 형식으로 벌어지는 이번 연극제에는 여러편의 신작이 선보여 IMF로 인해 한동안 신작공연이 뜸했던 연극계를 풍성하게 한다.

특히 이번 연극제에서 볼만한 연극으로 극단 유가 10월 8일부터 11월 7일까지 유 시어터에서 펼치는 '철안 붓다' 를 들 수 있다.

'남자충동' 으로 연극계의 젊은 피를 수혈했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조광화의 신작으로 23세기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인간복제와 생명경시 풍조가 낳은 신인류 철안족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인간도 동물도 아닌 신인류 철안족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고민하는 청년 시원을 통해서 최후의 인간으로 남은 자들의 소멸과 불멸에 관한 이야기를 신화적 방식으로 풀어낸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연극이라 하겠다.

다음은 학전이 제작한 장진 작.연출의 '허탕' (10월 31일까지 학전그린 소극장) 이다. 탈출하려는 자와 안주하려는 자의 모습을 감옥이라는 상황을 통해서 보여주는 이 연극은 마치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연상하게 한다.

장진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대사 곳곳에 배치돼 있어 지루함을 느끼기 힘들다.

극단 산울림이 창단 30돌 기념작품으로 무대에 올리는 '가시밭의 한송이' (8일~10월 10일까지 산울림 소극장) 는 연출가 이윤택과 배우 윤석화라는 연극계의 이질적 두 스타가 처음으로 만나 만드는 연극이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연극인들과 당대의 최고로 손꼽히는 한세대 위의 연극인들이 만들어나가는 이 가을의 다양한 우리 연극이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오은희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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