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수하르토의 계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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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람이 사는 섬만 1천여개, 육지면적만도 한반도의 9배에 이르는 인도네시아는 외견상 거대한 해양제국이다.

지배하는 해역까지 합치면 러시아나 미국에 손색없는 영역이고 2억 인구도 세계 4~5위의 대국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그 영역과 인구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위상을 갖고 있다.

제대로 개발이 안돼 있다는 것이 그 이유지만, 통일성이 없는 지역과 주민을 억지로 합쳐놓았다는 문제가 그 배경에 있다.

유럽인이 이 해역에 처음 진출하던 16세기 초까지 이곳에는 대규모 정치조직이 없었다.

자바섬 하나만도 여러 정치세력이 나눠갖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도 토속신앙이 남아 있는 지역, 힌두교가 자리잡은 지역, 최근에 이슬람교가 들어와 뿌리를 내린 지역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16세기에 이곳에 나타난 포르투갈인은 향료의 채집에만 열중했을 뿐, 항구적 통치조직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17세기 들어 포르투갈인을 물리치고 이 해역의 주도권을 잡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수백년에 걸쳐 안정된 행정조직을 확장해 나간 것이 인도네시아의 발판이 됐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의 주축은 자바섬이었다.

자바섬은 면적으로 인도네시아의 10분의1이 안되지만 인구는 절반이 넘고, 산업과 교육 등 근대화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자바섬과 문화적.종족적 거리감을 느끼는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 독립의 의미를 네덜란드에서 자바섬으로 지배권이 옮겨간 것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제 분리독립을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한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이 마지막까지 지킨 식민지였다.

1975년 독립 직후 인도네시아에 정복당했지만 수백년간 달리해 온 역사배경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편입되기 어려운 곳이었음은 공포분위기 속에서도 높은 투표율을 보인 데서 알아볼 수 있다.

1969년 뉴기니섬 서부를 획득한 것은 그 몇해 전 쿠데타로 집권한 수하르토의 입지를 굳혀 준 자랑스러운 승리였다.

수하르토는 그 여세를 몰아 동티모르에까지 손을 뻗쳤지만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에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는 계륵 (鷄肋) 과 같은 존재가 됐다.

지난 연초 하비비 대통령의 동티모르 독립허용 방침 전격발표는 정권의 불안요소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침은 군부와 보수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왔다.

동티모르의 독립이 다른 지역의 분리욕구를 부채질하는 도미노효과를 우려하는 것이다.

동티모르의 독립 자체보다 인도네시아 국가조직의 전면적 붕괴 여부가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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