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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日經連 오쿠다 히로시 회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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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쿠다 히로시 (奧田碩.66) 는 요즘 일본에서 가장 알아주는 사람 중 하나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인 도요타자동차의 회장이자 일본 경영계를 대표하는 닛케이렌 (日經連.일본경영자단체연맹) 회장 등의 직함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재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업인이자 뉴 리더이면서 한편으론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명쾌하고 구체적인 논리로 일본 경제.사회 및 관료조직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해 국내외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때문에 그의 특질 (特質) 을 일단이나마 파헤치려고 시도한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침 외환위기로 고통받는 아시아 각국을 지원하자는 의도로 마련된 '미야자와 플랜' 의 하나로, 30여명의 경제인으로 구성된 '아시아경제재건조사단' 을 이끌고 서울에 온 오쿠다 회장을 만나 그의 경제관과 경영철학 등을 들어봤

다.

그는 29일 다음 행선지인 베트남으로 떠났다.

[만난사람= 곽재원 산업부 차장]

- 이번 한국 방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6개국을 방문해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는지 알아보고 구체적인 협력.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방문단을 구성했습니다. 그 첫 방문지로 가장 모범생이며 이웃에 있는 한국을 택했죠. 지난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이후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외환위기 이후로는 첫 방한입니다. "

-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각국의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봅니까.

"객관적인 평가는 각종 경제지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3분의1에서 절반 수준까지는 회복된 것 같아요. 물론 나라마다 차이는 크죠. 한국처럼 아주 성과가 뛰어난 곳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혼란 등으로 회복이 더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도 있고…. "

- 얼마전 닛케이렌 세미나에서 "시장을 지나치게 중시하면 인간이 저급해진다"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물러나라" 는 등의 발언을 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는데 무슨 의도입니까.

"경영자에게 있어 이윤창출은 기본입니다. 이를 위해 사람.돈.상품.정보 등을 수단으로 이용하지요. 하지만 감정을 가진 사람까지도 다른 수단과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종업원과 그 가족들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경영자의 기본적인 책임이라고 봅니다. 일본 경영자들에게 이런 점을 좀 더 생각하라는 뜻을 전달한 거죠. "

- 경영의 합리화.효율성을 강조하는 구미 (歐美) 경영방식을 의식한 발언인가요.

"일본과 구미는 사회환경이 다릅니다. 구미 각국은 실업자를 위한 사회보장이 잘 돼 있습니다.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일정기간 국가가 이들을 보호해주죠. 일본도 실업수당이 3백일 정도 나오지만 사회보장은 미흡한 수준입니다.

일본의 경영자들은 이런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고용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할 때는 자신이 먼저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를 역설하지 않았습니까. "

- 일본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종신고용.연공서열제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일까요.

"과거 지속적인 성장 속에서는 사실상 완전고용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하락할 경우 현실적으로 과거 관행을 유지하긴 힘들 겁니다. 때문에 실직자들이 새 직장을 찾을 동안 이들을 보호하는 사회적 보장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

-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大前硏一)가 얼마전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는 등 한국 경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견해는 다를 수 있겠지요. 오마에가 말하는 '한국' 은 언제적 '한국' 인지 묻고 싶군요. 그 사람 한국에 온 지 오래된 것 아닌가요. 아무리 봐도 '옛날 한국' 을 말하는 것 같아요. 나는 오마에와 견해를 달리합니다.

한국은 많이 변했습니다. "

- 한국에서 재벌개혁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 주도의 재벌개혁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과거 일본 재벌의 예에서 보더라도 독점이나 경쟁배제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재벌을 없앤다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소프트랜딩시켜야 합니다. 金대통령도 정부가 재벌개혁을 강요하기보다는 원만히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 그렇다면 재벌은 어떤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까. 일본의 '기업집단' 같은 형태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룹에 속한 기업들이 모기업에 기대지 말고 독자적으로 생존해야 하며, 독점이나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는 철저히 배제해야 합니다.

사업적으로는 다른 어느 기업과도 차별없이 자유롭게 거래하고 경쟁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일종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느슨한 연합체' 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 대우사태를 보는 일본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투자가들은 대우사태와 재벌개혁의 추이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우의 해외부채 문제가 꼬이면 국제신용도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겁니다. "

- 최근 한.일간 경제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국 관계를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없습니다만 이번 조사 결과가 나오면 보다 가시화된 협력방안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대한 (對韓) 투자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엔고 추이 등을 감안할 때 분위기만 조성되면 일본 자금이 한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

- 80년대까지만 해도 제조업에서 우위를 보인 일본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일본 기관차론'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세계경제는 다시 미국이 주도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과거에 비해 형태는 다르겠지만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 다시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일본은 제조업 분야에서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금융.정보 등의 재편작업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어요. 멀지 않아 성과가 나올 겁니다. "

- 일본 경제의 침체 속에서 도요타자동차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습니다. 도요타에는 2조엔 (약 20조원) 정도의 여유자금이 있었는데 이를 부동산 등 재테크에 활용하는 대신 은행에 맡겨두고 자동차를 만드는 데 전념했습니다. 보수적인 운용이 위험을 피하게 한 셈이죠. "

- 지난 60년대 중반 신진자동차와 제휴, 최초의 국산차 코로나를 만든 적이 있는데 다시 한국 기업과 제휴할 계획은 없나요.

"아직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일제자동차에 대한 수입제한이 폐지돼 앞으로 한국 진출은 늘 것입니다. 하지만 가격차이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

- 일본의 정치가나 경영자들은 역사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인물들은 누구입니까.

"나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성향을 좋아합니다. 메이지 (明治) 시대의 개혁가 사카모토 료마 (坂本龍馬) 나 전국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같은 인물을 좋아해요. 특히 사카모토는 '죽더라도 앞을 향해 쓰러지겠다' 며 실제로 그렇게 죽을 정도로 진취적이었어요. "

-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그저 산보나 하고 가끔 골프를 칩니다. 핸디캡은 15정도인데 너무 잘 치면 은행에서 일은 안하고 골프만 친다고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아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웃음) ."

-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정리 = 김국진.사진 =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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