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신문산업도 개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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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우리 사회는 개혁이란 말로 뒤덮였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활발해 많은 적자기업들이 퇴출되고 재벌들은 급진적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신문산업만은 개혁이란 말이 거의 들리지 않는 무풍지대다.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는 경제적 가치에 나름의 몫을 더함으로써 살아간다.

그가 더한 가치, 곧 부가가치에 대한 보상이 그의 수입이다.

신문의 경우 부가가치는 독자들이 읽는 기사들의 가치와 그런 기사들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자원가치 사이의 차이다.

지금 대부분 신문들은 여러 해째 상당한 폭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이 사실은 그들이 가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덜어낸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곳들에 쓰일 수 있는 자원들이, 즉 고급인력과 시설 및 원자재들이 신문을 만드는 데 아주 비효율적으로 쓰인다는 얘기다.

물론 이내 반론이 나올 것이다.

"신문들이 정말로 사회의 가치를 줄인단 말이오. 어떻게 사물의 가치를 돈으로 정확하게 잴 수 있소. " 이런 반론은 물론 일리가 있다.

돈은 사물의 가치를 재는 데서 가장 보편적인 척도지만 (돈으로 잴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목숨과 같은 것들을 잴 때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쓰이지만) , 때로는 어떤 재화 (財貨) 의 금전적 가치는 그 재화의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의 값은 싸다.

다이아몬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도 되지만 값은 무척 비싸다.

물의 경우처럼 어떤 재화의 경제적 가치는 시장에서 형성된 금전적 가치보다 크다.

그런 차이는 '소비자 잉여 (consumer surplus)' 라 불린다.

우리가 신문이 나오지 않는 일요일마다 새삼 느끼는 것처럼 신문의 소비자 잉여는 무척 크다.

한달에 채 1만원이 되지 않는 돈으로 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게 되니, 독자들로선 엄청난 이득이다.

따라서 비록 적자를 내지만 신문들은 사회에 큰 가치를 더한다.

그러나 적자는 적자다.

적자를 내지 않는다면 신문사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클 것이다.

게다가 적자는 신문사들의 재정적 바탕을 무너뜨려 신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지금 우리 신문들이 정치적 압력에 약한 까닭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재정적 취약성이다.

이에 따라 투자, 특히 기자들의 소양을 높이는 데 투자를 많이 할 수 없으므로 신문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일 수 없다.

이것은 해결책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문제다.

그러나 마냥 덮어둘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쌓이는 적자는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토머스 칼라일이 신문기자들을 "다른 3부 (府) 를 합친 것보다 중요한 제4부" 라고 평한 뒤 한세기 반 동안 신문은 사회에 크게 공헌했고 시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런 영광된 자리를 유지하려면 우리 신문들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재벌의 아픈 경험이 가리키는 것처럼, 바뀌어야 할 때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곧 무지막지한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

그리고 외부의 힘에 의한 재벌개혁이 시장경제의 원칙에 큰 상처를 낸 것처럼, 외부의 힘에 의한 신문산업의 개혁은 자유로운 사회를 떠받치는 신문의 독립성을 적잖이 허물 것이다.

우리 신문산업의 적자는 해당 신문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고, 이제는 그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

복거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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