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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희로씨 석방소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내 최장기수이기도 한 재일동포 김희로 (金嬉老) 씨가 다음달 가석방돼 고국에 돌아온다고 한다.

한국인 차별에 대한 분노를 살인.인질극으로 터뜨린 뒤 장장 31년의 감옥살이 끝에 71세의 노인이 돼 풀려난다는 소식에 반가움과 함께 깊은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일본 폭력배였다 하더라도 두 명이나 살해한 그의 범죄행위는 결코 정당화하거나 미화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金씨 사건이 갖는 상징성이며, 재일동포 차별문제의 어제와 오늘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당국의 金씨 석방은 한.일관계의 한 귀퉁이에서 한 세대를 넘기며 지속돼온 한가지 한 (恨) 을 푸는 조치며, 오히려 늦은 감이 많다.

일본내에는 범죄조직이나 극우파 등이 金씨 석방에 반대하고 심지어 석방되면 위해 (危害) 를 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는데, 어이없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석방과 호송, 귀국 과정에 한.일 양측이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가석방을 계기로 일본 정부와 사회가 재일동포 차별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길 촉구한다.

일본 중의원이 지난 13일 외국인 지문날인제도를 완전히 철폐하는 내용의 외국인등록법 개정안을 확정하는 등 金씨 사건이 터진 60년대와 비교하면 재일동포의 인권은 많이 향상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도 유.무형의 차별사례가 생활 곳곳에 널려 있음을 일본 당국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학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자녀가 일본식 이름인 통명 (通名) 을 버리고 본명을 사용하는 데는 아직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조총련계 동포 자녀들이 일부 우익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흉기로 찢기는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편으로 우리 정부나 언론.국민도 金씨 석방을 계기로 재일동포 문제에 얼마나 성의를 보이고 노력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최근 재일한국인들이 요구하는 지방참정권 문제를 놓고 우리 정부가 국내 정주 (定住) 외국인에게 먼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려고 추진 중인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번 기회에 국내에 사는 외국인, 특히 제3세계에서 온 근로자들을 한국 사회가 무시하거나 차별대우를 일삼는 경우는 없는지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金씨는 고국에 가면 제일 먼저 종군위안부 피해여성과 한국인에 의한 일본인 역차별 (逆差別) 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경주 나자레원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학대받고 차별당한 양국 할머니들을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이 과연 그답다.

金씨 석방이 재일동포 차별문제를 넘어 한.일관계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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