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라크 꼴 날까 불안 선군정치 신 헌법에 명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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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 헌법은 북한 체제의 지난 10년간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대응하면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역할과 위치를 정립하는 등 내부 체제를 정비했다. 신 헌법은 앞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난달 3일 북한에 입국해 2주간 평양에 체류한 뒤 북한 헌법 원문을 직접 가져온 오우치 노리아키(大內憲昭·58·사진) 일본 간토가쿠인(關東學院)대 교수는 북한의 헌법 개정 의미를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9일 요코하마(橫濱)의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나는 학자로서 북한 헌법을 전문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북한에 가지 않으면 연구를 못한다”며 “황장엽 선생도 탈북하기 전 북한의 자택에 수시로 방문하는 등 북한 요인들과 오랜 친분을 쌓아 왔다”고 말했다.

-이번 헌법 개정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북한 헌법은 1998년 개정한 이래 10년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북한 측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면서 미사일 개발에 주력해 왔다.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두 차례의 핵실험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받는 압력은 더욱 커졌다. 미국 등의 경제적·정치적 압력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이에 맞서 국가 자주권을 갖고 대항하기 위해서는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못하면 이라크처럼 된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헌법에는 그동안 걸어온 선군정치를 명문화했다.”

-개정 헌법에서 나타난 북한의 권력 체제의 변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위다. 98년 헌법 개정에서 북한은 국가 주석을 폐지했기 때문에 그 이후 국가원수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게 됐다. 실질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지만, 헌법상에서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국방위원장이 국가의 최고지도자’라고 헌법 100조에 명시했다. 국가 주석 권한 중 일부를 국방위원장의 권한으로 구체화했다. 선군사상에 기초하는 체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동시에 국방위원장 지위를 헌법상으로도 강화한 것은 의미가 크다.”

-북한이 언제부터 헌법을 중시했나.

“북한은 외부에 알려진 바와 달리 헌법을 중시한다. 1948년 9월 건국 당시부터 헌법을 만들었다. 72년 12월에 전면 개정해 ‘김일성 국가주석’을 명기하고, 92년에 이어 98년 개정했다. 헌법을 토대로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법률과 개정 법률 책을 내고 있다. ”

-후계 문제와도 관련이 있나.

“헌법과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 헌법 어디에도 후계자를 암시하거나 관련된 부분은 없다.”

-주권 보유자로 군인이 포함된 것은 어떤 의미인가.

“헌법 3조의 국가주권 항목에 처음으로 군인이 포함됐지만, 특별히 변한 건 없다.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은 원래 무장혁명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군인이 정치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군인은 국가방위뿐 아니라 도로건설 등 국가 건설도 담당해 왔다. 북한에서는 군인의 역할이 원래 컸다는 의미다.”

-평양의 표정은 어땠나.

“29세였던 80년부터 해마다 드나들고 있는데 이번에 150일 전투를 했다고 해서 거리 분위기가 특별히 바뀐 것은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건물이 생기거나 재정비되고 있어 거리 분위기는 점점 밝아지고 있다. 안정된 분위기였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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