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총선 땐 효자 노릇 이젠 되레 여당 발목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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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에 신당 바람이 불고 있다. 4.30 재.보선 때 공주-연기에서 정진석 의원이 당선된 게 이를 입증한다. 정 의원은 선거에서 신당을 추진 중인 심대평 충남지사의 지원을 받았다.

열린우리당은 이 같은 선거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이 전력을 기울여 온 행정도시 건설 예정지가 연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충청권은 행정수도 이전을 밀어붙인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표를 몰아줬기에 놀라움이 더욱 컸다. 노 대통령 스스로도 "재미를 좀 봤다"고 했을 정도였는데 이번엔 패한 것이다. 여권의 기대대로라면 행정도시가 구체화되면서 지지가 확산돼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가 된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를 '행정도시의 역설'이라고 설명한다. 행정도시 논란이 오히려 지역정당 출현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정치의 아이러니인 셈이다.

미디어 리서치 김지연 사회여론 본부장은 "지난해 10월 행정수도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충청도 사람들이 '여당이 이것밖에 안 되나'하고 실망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이런 허탈감은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촉발시킨 한나라당의 책임을 묻기보다 이를 지켜내지 못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같은 견해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지지부진하자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하락하고 아무런 역할도 없던 자민련 지지도가 소폭 상승하는 양태를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충청 유권자가 자기 지역의 이해를 대변할 지역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는 행정수도 이전이 정치 쟁점화된 시기에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계속 하락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반등했다. 한나라당이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고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지는 지난해 7~10월이다. 미디어리서치 조사의 경우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헌재의 대통령 탄핵 기각 한 달 후인 6월 9일 조사에서 43.6%로 치솟았다가 행정수도 위헌 결정이 내려진 직후인 11월 2일 조사에서 36.9%로 떨어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17%에서 6.1%포인트가 올랐다.

최근 한국갤럽이 대전과 충남북 유권자 5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중부권 신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34.6%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은 54.1%였다. 또 미디어리서치가 대전.충남의 분야별 전문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신당 창당에 대한 찬성 여론이 38.6%, 반대는 55.4%로 나타났다. 한국갤럽 허진재 부장은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대체로 신당 창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면서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30%대의 지지는 높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열린우리당 박병석 기획위원장의 분석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행정중심도시가 들어서는 공주-연기 지역 가운데 토지수용의 70~80%가 이뤄진 연기에서는 우리당이 몇 천 표 이겼지만, 공주에서는 우리당이 졌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패인으로 꼽았다. 그는 충남 아산에서 진 이유에 대해서도 "행정중심도시가 건설되면 아산이 혜택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지에서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역설은 공공기관 이전 상황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각 자치단체들이 군침을 흘리는 한전 등의 대형기관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진통이 벌어지면 해당 지역이 여당을 비판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전 지역을 제외한 주변에선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지역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주장하는 야당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행정도시 역설 현상의 귀착점은 어디일까 주목된다.

이정민 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5일자 3면 '행정수도 이전-역설의 정치' 제목의 기사 중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한나라당이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고…"라는 부분에 착오가 있었기에 바로잡습니다. 당시 헌법 소원은 이석연 변호사 등 3명의 변호사를 대표인으로 제기된 것이라고 이 변호사가 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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