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극한의료의 현장] 신생아 사망률 0%에 도전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수술실에서 민이(가명)의 실낱처럼 가는 혈관을 통해 마취제가 주입되고 있다. 민이는 심장 기형을 갖고 태어난 미숙아다. [최정동 기자]

추석 연휴가 끝난 월요일 오전 8시30분. 서울아산병원 신관 3층 3번 방 수술장에선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료진의 ‘사투’가 시작됐다. 대상은 출생한 지 6일째인 2480g 미숙아 민이(가명). 임신 34주 3일 만에 복합 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민이의 심장기형을 방치하면 첫돌 이내에 100% 사망하는 중증이다. 심장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가 바뀌었고 좌·우 심실 사이에도 큰 구멍이 나 있다.

민이가 생존하려면 대동맥을 좌심실로, 폐동맥을 우심실로 바꾸고, 폐동맥에 붙은 심장동맥(관상동맥)은 대동맥으로 옮겨야 한다. 여기에 심실 구멍까지 막아야 한다.

수술방 온도계가 섭씨 28도를 가리킨다. 집도의인 소아심장외과 서동만 교수는 “심장 수술 중에는 환자 체온을 30도까지 낮춰야 하므로 수술 준비가 끝나면 방 온도는 21~22도로 내려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이의 수술에 관여하는 의료진은 열 명. 마취과 교수와 인공 체외 심폐기를 조작하는 기사 2명, 전임의, 보조 간호사 2명이 분주히 움직인다. 민이의 작은 몸에 각종 기구가 부착되고 5개의 선이 연결됐다. 이 측정기구들은 수술 도중 혈압·산소포화도·맥박·뇌혈관 산소포화도 수치를 실시간으로 의료진에게 제공한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서동만 교수(왼쪽에서 둘째)가 미숙아 심장 수술을 하고 있다.

서 교수가 바늘처럼 가는 수술 기구로 피부를 절개했다. 이어 가슴 중앙에 위치한 가는 뼈를 절개하자 1분에 145~146회씩 뛰는 심장이 눈에 들어온다. 심장 크기라고 해야 메추리알만 하다. “대동맥이 앞쪽 우심실에서 나오는 거 보이죠. 우심방을 열고 심실 구멍을 먼저 막은 뒤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를 바꿔야 합니다.” 관상동맥의 굵기는 볼펜 심 정도. 2.5배로 확대해 보이는 미세현미경을 보며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서 교수가 대정맥 두 곳과 대동맥에 관을 삽입한 뒤 약을 주입하자 심장이 멎는다. 이제 민이의 혈액은 인공심폐기를 통해 순환한다. 심장이 멈춘 시간이 짧을수록 수술 성공률이 높고 후유증이 적게 남는다.

수술은 90분간 진행됐다. 수술이 끝난 뒤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약이 주입됐다. 잠시 긴장된 순간, 민이의 심장이 가늘게 파닥거린다. 인공심폐기의 작동이 꺼졌다. 순간 의료진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역력하다.

서 교수는 “2001년 민이 같은 심장기형을 가진 1.3㎏의 미숙아 수술이 성공해 현재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한 상태로 자라고 있다”며 수술 결과에 자신감을 보였다.

서 교수팀은 1995년 이후 1.3~2.5㎏의 저체중 출생아 97명(남자 50명, 여자 47명)을 수술했다. 수술 후 입원 중 사망하는 초기 사망률은 15.5%, 퇴원 후 사망하는 후기 사망률은 6.1%다.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UCSF 대학병원의 사망률이 21%(초기 11%, 후기 10%), 호주 멜버른 대학의 32.5%(초기 16.5%, 후기 16%) 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소아외과 분야의 다른 미숙아 수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소아외과 한석주 교수는 2003년 장에 구멍이 생긴 630g의 미숙아 수술을 성공시켰다. 그는 “미숙아 중에는 항문·소장·대장·식도가 막히거나, 장에 구멍이 뚫리고, 횡격막이 탈장되는 등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하는 환자가 제법 많다”며 “이런 환자들도 요즘엔 대부분 생명을 건진다”고 말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 사진=최정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