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마련 '재벌의 금융지배 개선방안'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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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18일 마련한 '재벌의 금융지배 개선방안' 은 한마디로 재벌계열의 금융기관을 계열에서 완전히 떼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이번 방안은 정부가 재벌계열의 투신사 대형펀드 등이 계열사들을 부당지원하는 '사 (私) 금고' 로 전락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던 중,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재벌개혁을 위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막겠다" 고 밝히면서 훨씬 강화된 내용으로 발표됐다.

그대로 실천만 되면 재벌의 금융지배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고강도의 내용이란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이번 방안은 현실을 무시한 필요 이상의 규제조치들을 남발해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방안은 ▶소유구조 제한 ▶지배구조 제한 ▶자산운용 규제 ▶경영투명성 강화 등 네 가지 틀로 짜여졌다.

먼저 소유면에서는 제2금융권 금융기관에도 은행 (4%) 처럼 대주주 지분율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대체로 10~20% 정도의 지분율 제한이 예상되고 있다.

지배구조에서는 은행과 같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해 앞으로 이사회의 2분의 1 이상을 채우도록 했다.

사외이사들에겐 거액투자 등에 대한 사전심의권을 주고 스톡옵션 보상을 높이는 대신 회사에 부당행위가 발생했을 때 연대책임을 묻게 된다.

일반투자자들의 입장에서도 큰 관심사인 자산운용 규제는 같은 계열 주식에 대한 펀드의 투자한도를 일단 10%에서 7%로 낮추고, 장기적으로 완전히 금지하도록 했다.

예컨대 삼성그룹 계열 금융사의 펀드들은 삼성계열사 주식을 편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경영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으로는 투자신탁설명서 등 공시내용을 강화하고 감독기관에 대한 불성실 보고에 대한 처벌을 무겁게 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들은 공정한 '시장의 룰' 에 의해 재벌의 금융지배를 자연스럽게 차단하기보다는, 너무 규제일변도로 치우쳐 과연 실천이 가능할지 의문스러울 정도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 박사는 재벌의 금융기관 소유 자체를 제한하는 방안과 관련, "외국금융기관들과 경쟁할 전문금융그룹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재벌의 금융기관 소유를 막으면 국내 금융시장은 완전히 외국계 금융기관들에 독식될 위험이 있다" 고 말했다.

李박사는 자산운용 제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5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하면 과연 투자할 만한 종목이 몇 개나 되느냐" 고 반문하고, "이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으며 투자자들의 권리까지 침해하는 엉뚱한 발상" 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 강종만 박사는 "소유나 투자를 강제로 제한하기보다는 그룹사 부당지원 등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범죄행위를 엄단해 엄두를 낼 수 없도록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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