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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합의 세제개혁안] 핵심 비켜간 '미완의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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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여당이 16일 합의한 세제개혁안은 우리 사회의 계층간 세금부담을 고르게 하겠다는 공평과세의 명분이 담겨 있다.

지난 6월 근로소득세를 평균 28% 깎아 중산층에 혜택을 준데 이어 이번에는 '가진 자' 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방안들을 망라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의 입장을 헤아리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당초 개혁의지가 퇴색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시행시기가 2001년 소득분부터로 늦춰져 2002년 5월에나 첫 과세가 이뤄지게 됐고, 과세특례를 없애기 위한 부가가치세 개정안의 시행시기는 여당 반대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논의키로 했다.

반면 재벌개혁을 겨냥한 상속.증여세제의 개편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강도의 내용들로 채워졌다.

이 부분은 시행도 당장 내년부터 이뤄진다.

최명근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제는 사실상 전 국민의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누구나 공감하는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 면서 "우리 경제의 최대과제로 재벌개혁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세제가 재벌 몰아치기의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고 말했다.

한마디로 세제개혁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라면 그 강도가 재벌이나 자영업자.자산소득자 모두에게 고루 와닿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벌과 관련한 상속.증여세 개편은 ▶ 주식양도차익 과세대상 (현재 3년간 지분 1% 이상 거래) 을 1주 이상의 모든 거래로 확대하고 ▶ 세율은 20%에서 20~40%의 누진세율로 강화하며 ▶ 상장 전 증여 주식에 대해 상장 후 주식가액을 따져 추가로 증여세를 물리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부 (富) 의 세습을 막고 기업의 소유.지배구조가 개선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팔지 않은 상장주식의 미실현 소득에까지 세금을 물리기로 한 것은 위헌소지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비해 과세특례제도 등 간이과세제도를 없애기 위한 부가세법 개정에 여당이 미적거리는 것은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당이 그 불합리성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YS정권 때 선거를 의식해 만들었던 제도를 이제 다시 선거 때문에 고치지 못하는 꼴이다.

상속.증여세를 강화하면서 배우자공제 (30억원) 를 손대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여성들의 표를 의식한 결과다.

고급주택에 대한 취득.등록세를 강화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부동산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거래에 붙는 세금을 줄이는 대신 양도세와 재산세를 더 강화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세제개편이 앞으로 세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재정경제부는 "이자소득세와 특소세 감소 등으로 당장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며, 상속.증여세와 부가세 강화를 통한 세수증대는 3~4년의 시차를 두고 천천히 나타날 것" 으로 내다봤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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