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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도쿄타워] 일, 무너지는 '안전신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밤거리가 안전한 나라, 친절하고 근면한 사람들…' .일본.일본인에 대한 외국인의 첫인상은 대개 이랬다.

굳이 '이랬다' 라는 과거형을 쓴 것은 요즘 그런 이미지가 슬슬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정신병자가 하이재크에 나서는가 하면 야쿠자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신칸센 터널에서는 콘크리트조각이 떨어져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

쓰루가.다카하마 원전에서는 냉각수가 새어 나왔다.

병원에 가기도 겁난다.

요코하마병원에서는 심장병 환자와 폐병 환자를 뒤바꿔 수술했고 마쓰에 적십자병원에서는 엉뚱한 혈액형의 피를 수혈해 환자를 중태에 빠뜨렸다.

명문 게이오대 의대생들이 여자를 집단 성폭행하는가 하면 엘리트 관료 출신 은행장이 장부를 조작했다.

택시기사들은 일본어가 서투른 외국인이 타면 가까운 길도 돌아가는 경우가 적잖다.

입국관리국 공무원들은 외국인이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지 웬만하면 반말이다.

한두번이면 예외로, 서너번이면 우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하나의 추세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다.

금속도 피로를 느끼듯 꽉 짜인 일본 사회체제에도 피로가 몰려왔다고 한다.

성실하지만 가끔 방향 감각을 잃고 엉뚱하게 폭주하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일본인 스스로도 개탄하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빈부격차도 벌어져 가며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물론 일본에는 아직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도 없고 신창원이나 '경기도지사' 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몇년 뒤엔 일본도 더 이상 '안전신화' 의 이미지를 자랑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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