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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뮤직다이어리] 경쾌한 록밴드 '마이 앤트 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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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만화 '20세기 소년'의 한 대목. "21세기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특별한 느낌… 그런 건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어." 맞는 말이다. 21세기에는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2004년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은 1990년대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엄연히 '세기말'로서의 90년대는 존재했다. 지금과 다른 90년대의 정서가 있었단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 라디오헤드의 'Creep'.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이 한번쯤은 빠져들었을 아이콘이다. 방황과 좌절의 아이콘. 당시의 많은 인디 밴드는 록이라는 언어를 빌려 그런 시대정서를 노래했다. 매캐한 곰팡이 냄새 나던 시대의 이야기다. 마이 앤트 메리는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였던 90년대에 오히려 밝고 쾌활한 팝을 선보였던 몇 안 되는 밴드다. 그들은 밝은 멜로디와 매끄러운 목소리로 시간과 상관없이 늘 곁에 있는 일상을 노래했다. 그러나 첫 앨범 'My Aunt Mary'와 그 뒤를 잇는 '2002 Rock N'Roll Star'는 아직 그들의 재능이 채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준, 가능성만 돋보이는 작품이이었다. 게다가 시대는 그들의 팝적(的) 감각을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올해 초 선뵌 싱글 '공항가는 길'이 변화의 징조였다. 세번째 앨범 'Just Pop'은 그런 과거를 말끔히 털어내는 앨범이다. 세련된 사운드와 힘이 넘치는 노래는 그들의 재능이 비로소 활짝 피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시대도 변했다. 문학과 영화.음악 모두 어두운 것보다는 밝은 것이 사랑받는 게 지금 아닌가. '공항 가는 길''골든 글러브' 등의 노래는 시간을 숙주삼아 만개한 재능이 뿜어내는 경쾌한 호흡이다. 약 10년 전 김현철과 이승환 등의 초기 작품이 갖고 있던 풋풋한 에너지가 여기서 되살아나고 있다. 음(陰)이 쇠하면 다시 양(陽)이 흥하게 마련. 세상의 이치다. 마땅히 음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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