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살아있다] 10. 가락시장의 상가별 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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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청과시장 (오전 8시30분)

경매를 앞둔 수박이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날 밤 충북 진천에서 1t트럭 한대 분을 싣고 올라온 김덕호 (47).봉성옥 (46) 씨 부부. 이들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농민들이 가져온 수박과 자신들의 물건을 비교해 보고 낙찰가를 가늠해 본다. 김씨가 "개당 8천원은 받을 수 있겠다" 고 말한다. 부인 봉씨는 "요즘 물량이 넘쳐 값이 엉망이라던데" 라며 걱정을 한다.

▶채소시장 (오후 11시30분)

무.배추를 가득 싣고 온 5t트럭 50여대가 경매장을 메운다. 강원도에서 올라온 농민, 경매에 참가한 중도매인.경매사.기록사들이 뒤엉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순서에 따라 배추 한트럭이 경매된다. "중도매인 4백3번, 2백50만원에 낙찰. " 이를 지켜보던 농민들은 생각보다 낮은 가격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일꾼들은 재빨리 트럭에서 배추를 내려 다듬기 작업을 한다.

▶수산시장 (오전 3시30분)

광어.도다리.농어.숭어.도미 등 활어 (活魚)가 펄떡거리며 물을 튀긴다. 장화를 신은 어민.경매사, 중도매인들로 시장이 붐빈다. 한쪽에서는 경매가 한창인 가운데 좋은 횟감을 사기 위해 서둘러 나온 일식집 주방장들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만선 (滿船) 으로 시끌벅적한 새벽 부두와 같은 풍경이 오전 5시까지 이어진다.

▶직판시장 (오전 5시45분)

경매를 거친 물건들이 시장내 1천3백여 점포에 우선 진열된다. 백화점 바이어와 소매상인들에게 간택 (?) 된 상품들 먼저 트럭에 실린다. 1t트럭을 몰고 야채와 과일을 떼어 파는 일명 '떴다방' 상인들도 각 점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간다. 수박 점포에서는 도매상인과 단골 소매상인이 입씨름을 벌인다. "어제 가져간 수박이 엉망이라 장사 망쳤어. " "오늘 몇 통 값 빼줄게. "

▶시장 내 상가 (오전 7시15분)

각종 가공 식품과 공산품을 파는 할인점포도 이곳에 있다. 상인들은 인근 식당 등에 조미료.설탕 등을 납품. 이들은 오전 6시를 전후해 퇴근한다. 오전 2시에 출근한 부부가 운영하는 점포에서는 안주인이 서둘러 먼저 퇴근한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챙겨주기 위한 것. 바깥 주인은 가게에 남아 전날 주문한 물건을 받아 창고에 쌓는다. 밀린 잠에 못이겨 한편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도 보인다.

▶건어물시장 (오후 4시5분)

물건을 사러 온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많은 시간. 일부 상인들은 다음 날 팔 물건을 공급받아 챙긴다. 이미 문을 닫은 점포도 꽤 된다. 몇몇 가게만 드문드문 불을 켜놓고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밤 장사를 하는 룸살롱.단란주점 주인들이 이 시간의 주고객이라는 게 상인들의 귀띔. 몇몇 상인들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화투를 치기도 한다.

▶서비스 동 (낮 12시30분)

시장 상인들의 먹거리를 책임 지는 이색지대. 1백여개의 식당들은 하루 24시간 영업해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새벽 장사를 끝낸 시장 상인들이 주고객.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상인들은 주로 배달시켜 먹는다. 점심 시간이 되면 '철가방' 을 싣고 다니는 배달원들의 오토바이 곡예운전도 볼만하다. 이같은 풍경은 오후 3시까지 계속된다.

▶서울특별시농수산물공사 (오후 2시30분)

허신행 (許信行) 공사 사장이 24명의 상인대표와 5층 회의실에 둘러앉아 있다. 시장 운영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시장내 콘크리트 바닥이 파손돼 불편합니다. " "보수공사를 하려고 이미 준비 중에 있습니다.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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