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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향우'] 1. '국군갖자' 우익단체 거리 누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이 거침없이 우경화 (右傾化) 의 진군을 시작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괴선박 출현 등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한껏 이용하면서 군사력.독자 외교노선을 갖춘 '보통국가' 로의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가 높아지지만 미국은 침묵하고 있다.

사회당의 몰락으로 왼쪽 날개는 잘리고 오른쪽 날개만 커져버린 일본.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한국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3회에 걸쳐 일본 우경화 현상과 주변국 시각을 소개하고 전문가 진단을 들어본다.

지난 주말 도쿄의 이케부쿠로 (池袋) 역. "총리는 호국영령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해야 한다.

헌법을 고쳐 군대를 가져야 한다…. " 우익단체의 검은색 버스가 철을 만난 듯 확성기를 틀어대면서 거리를 헤집고 있다.

지난달 10일 사이타마 (埼玉) 현 방위의과대학에는 조잡한 사제 폭탄과 칼로 무장한 15세 고교생이 인질극을 펼쳤다.

소년의 주머니에선 "평화헌법을 파기하라" "미국.한국.러시아에 침략당한 국토를 탈환하자" 는 등의 내용이 적힌 성명서가 발견됐다.

히로시마 (廣島) 원폭 투하 추모일인 6일. 한 민방TV는 황금시간대 특집으로 11년 전에 개봉됐던 만화영화 '반딧불의 묘' 를 방영했다.

미군의 가혹한 공습으로 고아가 된 어린 두 남매가 산속의 토굴에서 결국 아사 (餓死) 하고 만다는, 일본인들의 일방적인 피해의식만 부각시킨 영화다.

같은 날 자민당은 전범.전몰자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떳떳하게 참배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9일에는 군국주의의 상징이던 일장기.기미가요를 국기.국가로 규정한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1월부터는 헌법조사회가 활동을 시작해 '전쟁포기' 및 '군대.교전권 불인정' 을 규정한 제9조의 개정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주변국으로 확대시킨 신 미.일 방위협력지침 (가이드라인) 관련법, 외부의 침략에 대비한 '유사 (有事) 법제' 논의, 경 (輕) 항공모함 도입론과 동해안의 한 섬을 상정한 상륙훈련 등등.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일본은 우경화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정치평론가 사타카 마코토 (佐高信) 는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가 정권유지 차원에서 보수파 공명당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경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전쟁은 악 (惡) 이 아니라 정책에 불과했다' 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책 '전쟁론' 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 청년들이 '천황군' 으로 자랑스럽게 전쟁터로 나가는 장면이 나오는 NHK 드라마 '스즈란' 도 인기다.

지난해에는 태평양 전범 1호로 지목돼 처형당한 도조 히데키를 미화한 영화 '프라이드' 가 주목을 받았다.

밑바닥에 흐르는 이런 분위기는 진보.혁신계가 몰락하고 보수인사들이 대거 당선된 지난 4월 통일지방선거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최근 우경화의 배경에는 장기불황과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도 한몫했다.

게다가 민주당.사회당 등 야당 세력이 지리멸렬한 것도 원인. 대포동 미사일.공작선과 같은 북한측의 군사적 위협도 보수화를 재촉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이 평화에 젖어 있던 국민 정서를 우경화하는 데 거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쿄 = 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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