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깊은 곳에 상암동이 있다.
썩은 것들이 모여 이제 산이 다 된 난지도
뒤편, 녹이 슨 함석조각 위로 구름이 건너가고
폐철더미 사이 작은밭엔 파꽃들이 하얗다.
붉은 우체통이 붙박힌 2층 슬라브 건물 앞을
노선버스가 지나가고, 흙먼지가 가라앉은 좁은 길,
늙은 맞벌이 내외가 쇠집게를 들고 간다….
- 이영진 (李榮鎭.43) '상암동' 중
무던히 사실적인가 하면 그에 앞서 자연주의이기도 하다.
그렇게 상황은 아무런 감정이입도 사절한 채 피사체로 나열되고 있다.
쓰레기로 만들어진 난지도. 이제 그 난지도에 이어 상암동을 삶의 변경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풍경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다.
도리어 그 살풍경 자체를 '버려진 길 위의 모든 것이 선 (善) 하다' 고 딱 한마디 주석을 달고 있다.
이 주석은 매혹이되 실수다.
고은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