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필요 없는 가습기 … 물 줄 때 알려주는 화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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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무리 기능이 훌륭한 제품이라도 볼품 없으면 외면당하는 시대다. 디자인은 기능 못지않게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필수적 요소가 됐다.

흔한 일상 생활용품이 KAIST 산업디자인학과의 배상민(38) 교수의 손을 거치면 새롭게 탄생한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만드는 눈과 손을 가졌다. 가령 ▶물 줄 때가 되면 저절로 기울어지는 화분 ▶전기가 필요없는 실크 가습기(사진) ▶접으면 주사위, 펴면 십자가 형태가 되는 MP3 ▶플라스틱 통 위에 올리면 변기가 되는 이동 화장실 ▶옷감 특성을 적은 전자꼬리표 등등….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작품 같은 생활용품을 만드는 그는 이미 세계 유수 디자인 전시회의 단골 수상자다.

화분에 제때 물을 주는 일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막상 물을 주려 해도 화분이 어느 정도 말랐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화분에 물 줄 때가 언제인지 알려주는 아디이어 상품이 ‘롤리-폴리 화분’이다. 물이 부족하면 기울어지게 설계돼 있다. 밑 부분은 오뚝이처럼 반원형으로 돼 있어 똑바로 서 있다가 화분에 필요한 수량이 차면 옆으로 기운다. 많이 기울수록 그만큼 화분이 말랐다는 신호다. 화분 속에 필요한 물이 가득 차면 화분이 똑바로 서고, 그렇지 않으면 균형이 깨져 기울도록 한 원리다. 간단한 마술처럼 알고보면 뻔한 이야기 같지만 ‘콜럼부스 달걀’처럼 누구나 떠올리긴 쉽지 않다.

전기가 필요없고 박테리아 걱정도 없는 가습기 ‘러브 팟’을 보자. 실크를 벌집 형태로 만들어 화분 형태의 물통에 꽂아 놓는다. 물통에는 물과 ‘아로마’ 향료를 함께 넣었다. 향료가 섞인 물은 실크 천을 타고 올라가 자연 증발한다. 아로마가 살균을 해 준다. 전기가 불필요해 노약자가 안심하고 쓸 수 있다. 이동화장실은 문명의 혜택이 부족한 오지에서 요긴하다. 플라스틱 통 등에 올려놓고 앉으면 그대로 변기가 된다. 배 교수는 이런 디자인을 ‘나눔 봉사’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의 머리엔 ‘창조의 엔진’이 숨어 있는 걸까.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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