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연주자 미칼라 페트리 18일 내한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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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졌던 악기 리코더를 1980년대에 재발견하며 기교파 연주자로 이름을 날린 미칼라 페트리. 18일 내한공연으로 최근 세계 음악계에 부는 리코더 부흥의 소리를 전한다. [뮤직컴퍼스 제공]

“여기 한국에는 마땅한 악기도 악보도 없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악보를 구할 방법이 있을까요?”

한국 리코더 연주자 1세대로 꼽히며 ‘춘천 고음악 축제’를 열어온 조진희씨.

1970년대 중반, 춘천 소양 중학교 학생이던 조진희(48)씨가 일본의 전음(全音)출판사에 보냈던 편지 일부다. 그는 일본어를 아는 아버지가 번역해준 편지 다섯 통을 보낸 끝에 악보 몇 권을 받을 수 있었다.

◆오해와 반대=조진희씨의 열정을 부추긴 주인공은 리코더.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가장 손쉽게 배웠던 악기다. 조씨 역시 학교에서 리코더를 시작했지만 그 때문에 인생이 바뀔 줄은 몰랐다고 한다.

“청명한 음색과 자연스러움이 저를 미치게 했어요. 그때 심정으론 리코더 연주자로 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죠.” 리코더 연주를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말에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 입시용’으로 플루트를 선택했다. 리코더는 대학에 학과도 없던 때였다.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리코더를 전공하며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우승한 권민석씨.

조씨보다 한 세대가 지나 리코더를 시작한 권민석(24)씨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리코더 연주자가 저의 장래 희망이라고 하면 친구들은 ‘그럼 난 캐스터네츠 연주자가 꿈’이라고 놀리곤 했어요.” 그는 서울대학교 작곡과에서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현재는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리코더를 전공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 리코더를 공부하는 최초의 한국인인 그는 지난달 말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우승 소식을 전했다. 6년밖에 되지 않아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리코더 콩쿠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회다.

◆숨은 가능성=이들은 “리코더는 오해를 많이 받는 만큼 가능성도 무한한 악기”라고 입을 모은다. 리코더는 르네상스·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즐겨 쓰던 악기였다. 바흐·헨델 등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음량이 작고 음역이 좁다는 이유로 점차 잊혀졌다.

1980년대 이 악기를 재발견하며 ‘리코더 비르투오소(기교파 연주자)’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가 덴마크의 미칼라 페트리(51)다. 그는 현재까지 4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전세계에서 1000회 이상 연주회를 열었다. 18일 내한 공연을 여는 페트리는 “금속으로 재질을 바꾸지 않고 나무를 유지하면서 소박함을 이어온 리코더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페트리는 “유럽에는 거의 모든 음악 학교에 리코더 전공자가 있다”며 “이 열풍은 세계적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코더의 ‘부흥’을 다시 한번 노리는 연주자들 발걸음이 바쁘다. 페트리의 내한 공연에 찬조 출연하는 조진희씨는 1997년부터 매년 ‘춘천 고음악 축제’를 열어 리코더의 새로운 면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리코더 매니어가 차츰 늘어 해마다 100명 이상이 모인다”고 전했다. 권민석씨는 리코더의 ‘양대 대회’로 불리는 런던 콩쿠르에 11월 도전한다.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작곡가인 판 아이크와 20세기 영국 록밴드인 ‘라디오 헤드’의 작품을 동시에 연주했던 그는 이번에도 바로크와 현대를 아우르는 레퍼토리를 준비 중이다.

김호정 기자

▶미칼라 페트리 내한공연=18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02-2052-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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