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인간의 수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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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명 (黎明) 의 여신 오로라는 어느날 티토노스라는 인간을 사랑하게 됐다.

여신은 인간에게 자신과 결혼해주면 '불멸' 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만족해 하며 오로라와 몇년을 함께 산 티토노스는 어느새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티토노스가 불만을 터뜨리자 오로라는 이렇게 말했다.

"불멸을 준다고 했지 언제 영원한 젊음을 준다고 했나요. 늙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 '그리스신화' 에서 오디세우스가 들려주는 '어떤 사랑 이야기' 다.

이 이야기는 늙을 대로 늙어서 마침내 오관 (五官) 을 잃은 티토노스가 오로라에게 제발 죽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오로라는 그를 귀뚜라미로 만든다는 데서 끝난다.

그때 티토노스가 몇살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흥미로운 것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19세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좀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런 신화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이 신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삶을 연장할 수는 있으되, 늙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는 오로라의 '운명적 노화론' 이다.

그것은 현대과학에 있어서의 '자연도태' 개념과도 통한다.

곧 종 (種) 의 보존을 위해서는 생식능력을 상실한 동물을 도태시켜 젊은 동물의 적성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노화가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은 노화 이외에도 여러가지 환경 문제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폭적인 지지를 받진 못한다.

어쨌거나 인간의 수명은 갈수록 늘고 있다.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50세에 불과했던 것이 한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80세 안팎에 이르고 있다.

의학 등 각종 과학의 발달과 사회적 조건이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을 연구하는 세계 각국의 기관들은 앞으로 20~30년 후면 인간의 평균기대수명은 1백세가 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71~97년 생명표' 에 따르면 97년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기대수명은 남자 70.6세, 여자는 78.1세로 나타났다.

암 (癌) 등 불치병과 난치병이 정복된다면 수명은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은 과제는 고령화시대에 따른 적절한 대책이다.

'새끼를 낳은 뒤에는 젊은 동물의 먹이만 축낼 뿐 종의 보존에 백해무익하다' 는 동물세계의 적자생존 논리가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면 1백세를 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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