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의 홍콩 전망대] 술에 찌든 중국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술자리는 전쟁터/술은 마땅히 권할 일이다/주량은 배포요/술병은 곧 품격일세. " 요즘 중국 주당 (酒黨) 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권주가다.

사실 중국인들처럼 술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중국인과 사귀거나 사업하려면 술은 필수다.

중국에서 한해 소비되는 술의 총량은 약 6천만t. 항저우 (杭州) 의 유명한 호수 '시후 (西湖)' 를 매년 16개씩이나 뱃속으로 들이붓는 셈이다.

이 가운데 최고 주당은 단연 하얼빈 (哈爾濱) 사람들이다.

추운 기후 탓인지 한사람당 매년 20㎏의 술을 마신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병원신세를 지는 일이 허다하다.

가정 불화는 말할 것도 없다.

쓰촨 (四川) 성 청두 (成都) 의 시 위생국은 최근 "지난해 술병으로 입원한 환자가 3백20명이며, 6백70명이 음주운전사고로 입원해 이중 1백20명이 사망했다" 고 발표했다.

이는 97년보다 20% 가량 늘어난 수치다.

청두시 부녀회는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에 남자들의 술이 늘었다.

이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 이라고 분석했다.

요컨대 '구조조정과 기업개혁 때문에 폭음이 늘었다' 는 평가다.

마침내 중국 정부는 '계주소 (戒酒所)' 설치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계주소란 술주정뱅이를 잡아다 가두는, 일종의 '주당 감옥소' 다.

대륙 술바람이 워낙 거세다보니 '술 안마시는 사회' 를 자부해왔던 홍콩까지도 취해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21건에 불과했던 음주운전 사고가 올해 들어 벌써 70건을 넘어선 것이 그 증거다.

한 나라로 합치다보니 쓸데없는 것까지 닮아가는 모양이다.

진세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