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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팔봉 '한 개의 불빛'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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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모 말없이 오래 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어왔다

오래 동안을 이 가슴 속의

다만 하나인 한 갈래길을.

가슴 속에서 울리어오는

느끼어 우는 가만한 소리…

아아, 아모 말없이 오래 동안을

업어가지고 온 나의 마음아!

……

아모 말없이 오래 동안을

나는 이 길을 더듬을 터이다

한량도 없는 이 가슴 속의

한 갈래인 오즉 이 길을.

- 김팔봉 (金八峰.1903~1985) '한 개의 불빛' 중

1923년 9월 동인지 '백조' 3호에 발표된 것이다. 백조 동인이지만 프로문학 운동의 전위로 활약한다. 그의 '백수의 탄식' 은 문제작이었고 임화와도 무척 논쟁적이었다.

일제 말의 굴절을 지나 6.25 당시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로 처형된 현장에서 기적으로 살아났다. 그 뒤로 박정희 군사정권을 문인 최초로 지지했다. 시대의 여러 풍운이 그와 함께였다.

여기 시 한편은 그의 20년대 포부가 담긴 것이다. 그의 격렬한 이론들과 다른 한쪽에서 이렇듯 소박한 노랫말 같은 시심이 고여있었다. 팔봉 김기진.김복진이 다 예술혼이 진했고 남다른 사회의식도 뜨거운 형제였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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