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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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호 33면

폴란드계 프랑스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76)는 인생의 쓴맛을 고루 맛봤다. 그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다. 1942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유대인 부친과 폴란드 가톨릭교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가톨릭교도로 자랐으나 유대인으로 분류돼 희생됐다. 유대계 폴란드인인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수용소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지만 종전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폴란드 크라코프로 이주했던 어린 로만은 게토(유대인 강제거주지역)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다 43년 탈출, 가톨릭교도인 외가 친척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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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두 번째 불행은 첫 부인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영화배우 생활을 하던 그는 폴란드에서 59년 동료 배우 바르바라 라스와 결혼했다. 하지만 2년 뒤인 61년 바르바라는 오스트리아 미남배우 카를하인츠 뵘과 눈이 맞으면서 그를 떠났다.

세 번째는 막가파식 범죄자들에게 임신 8개월의 두 번째 부인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68년 할리우드 배우 샤론 테이트와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다. 그가 가장 행복했다고 꼽는 시기다. 이웃인 홍콩 출신 배우 브루스 리와 친분도 쌓았다. 하지만 샤론은 69년 남편이 영화 일로 런던에 간 사이 집에 놀러 왔던 다른 네 사람과 함께 ‘묻지마 살인’의 희생자가 됐다.

네 번째는 2004년 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로부터 당한 명예훼손이다. 샤론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에 노르웨이인 모델을 만나 성적 접촉을 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그를 괴롭혔다. 프랑스에 살던 그는 이를 런던법원에 제소해 5만 파운드(약 1억원)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국제사법제도를 잘 이용한 결과다. 미아 패로를 비롯한 동료 영화인들이 유리한 증언을 하는 내용을 비디오에 담아 런던법원에 보냈다.

그런 그가 이번엔 가해자로서 9월 26일 스위스에서 체포됐다. 77년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미성년자인 13세 소녀를 성추행한 혐의로 미국에 넘겨질 처지가 됐다. 당시 불구속 재판을 받던 그는 이듬해 파리로 도피, 프랑스 국적으로 살아왔다.

2002년에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로 프랑스 칸영화제 작품상과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감독상 등 여러 상을 탔지만 미국에 가지 못해 수상하지 못했다. 체포될 위험 때문이었다. 2004년 영국 배경의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를 프라하에서 촬영했던 것도 단지 비용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이유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이 위대한 감독을 그런 일로 미국에 인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미 당국은 아무리 대단한 예술가라도 법 앞에선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운다. 폴란스키는 89년 엠마누엘레 사이너와 결혼해 딸 모건과 아들 엘비스를 두었다. 엘비스는 폴란스키가 좋아하는 미국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사랑했던 두 번째 부인과 좋아했던 엘비스가 누워 있는 나라를 찾을 수 없었던 지난 31년이 그에겐 상당한 형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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