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이태준과 김용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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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근원(近園) 김용준(1904~67)과 상허(尙虛) 이태준(1904~?)은 한국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수필가다. 근원의 '근원수필'과 상허의 '무서록'은 가히 수필 문장의 정수를 보여준다. 상허가 자신의 수필을 모은 책 제목을 '두서없이 기록한 글'이란 뜻의 '무서록(無序錄)'이라고 지은 속마음이 그가 남긴 또 한 권의 역저 '문장강화'에 드러나 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화가이자 미술평론가로 더 이름났던 근원 또한 나름의 수필론을 펼쳤다. "인생으로써 쓴맛.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고서야 수필다운 수필."

'일인(日人)의 세상에서는 산송장 노릇을 하던' 두 사람은 일제 강점기 가혹했던 식민통치와 언어말살의 폭압 아래 의기투합한 친구였고, 해방과 한국전쟁 공간에서 나란히 북으로 갔다. 1988년 정부가 월북 작가에 대한 해금조치를 내리기까지 이들의 이름과 작품이 우리 곁에서 오래 사라졌던 까닭이다.

김용준은 근원 외에도 검려(黔驢).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 등 여러 가지 아호를 썼는데 '검려지기'란 수필에서 그 까닭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욕설 많기로 유명한 이 조선 땅에서도 '변성명(變姓名)할 녀석'하면 목숨을 내걸고 싸우려 드는, 욕설 중에도 해괴망측한 욕설이 창씨(創氏)란 간판을 걸고 우리 겨레를 습격해 왔다. 내가 창씨한 사람의 열에 끼이지 아니했다는 것쯤 그다지 자랑스러울 것도 못 되지만 한번은 어떤 입버릇 험한 친구가 '우산선부(牛山善夫)'하고 일본말로 웃으며 부른다. '예끼! 망할 친구'하고 곧 뱉어 버렸으나 두고두고 불유쾌해 견딜 수 없다."

고향이 선산(善山)이라 선부(善夫)라는 필명을 썼고 소의 우직함이 좋아 호를 우산(牛山)이라 했던 김용준은 이 둘을 맞붙여 일본명으로 부른 친구의 장난 한 마디에도 당장 호를 갈아버렸다.

올해는 근원과 상허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들의 후배 시인 이시영이 그 마음을 받아 읊조린다. "기념식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유족이 올해도 어김없이 비닐 천막 문을 열고 들어간다/조국의 하늘은 저리 푸르건만. -8.15."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