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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 문화행사 찾아 구석구석 함께 누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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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 ‘곡예사의 첫사랑’ 리허설 현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청류회’회원들. 왼쪽부터 김현 한국방송인동우회 부회장, 이종연 전 조흥은행장, 수필가 김희숙씨, 이차옥 성신여대 교수, 사업가 백대화씨. 신동연 기자

20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 내 야외공연장인 하늘극장엔 흥겨운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왕년의'소녀가수' 원희옥(68)씨의 간드러진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달 말까지 공연하는 서커스 악극 '곡예사의 첫사랑'의 리허설 현장이다.

"어머, 어쩌면 옛날 목소리 그대로네요."

"저 양반이 '눈물의 여왕'소리를 듣던 악극배우 전옥씨의 수양딸이라죠?"

객석 한쪽에 한무리의 사람이 모여 앉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있다. '청류회(淸流會)'의 회원인 이종연(72) 전 조흥은행장, 수필가 김희숙(72)씨, 김현(66) 한국방송인동우회 부회장, 사업가 백대화(65)씨, 이차옥(64) 성신여대 교수 등이다.

청류회는 매달 셋째 금요일에 만나 다방면의 문화를 만끽하는 모임이다. 1998년 10월 류달영 성천문화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미래지향문화강좌'의 졸업생 아홉명이 시작해 지금은 회원 수가 70여명에 이른다. 청류회란 이름은'우리 조상의 맑은 풍류정신을 이어가라'며 류 이사장이 직접 지어준 것이다.

지난 6년간 청류회 회원들은 문화 현장 구석구석을 열심히 누비고 다녔다. 전승공예대전.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같은 전통 문화행사부터 오페라 '투란도트', 뮤지컬 '레미제라블' 등 볼만한 공연은 빠짐없이 관람했다. '살바도르 달리전' '매그넘사진대전' '이중섭 특별전' 등 전시회도 빼놓지 않았다. 괜찮다는 입소문이 난 문화행사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섭렵해온 셈이다.

"이 나이에 혼자선 그렇게 못 다니죠. 언제.어디서 뭘 하는지 정보도 얻기 힘든 데다 괜히 쑥스럽잖아요. 다들 같이 가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서지요."(김희숙씨)

"솔직히 청류회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사는 게 바빠 문화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각계 각층의 회원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문화예술 애호가가 돼버렸네요."(백대화씨)

매달 공연 정보지를 뒤적이고 인맥을 동원해 가며 회원들이 즐길거리를 정하는 일은 대개 모임의 회장인 김현씨가 맡는다. 방송사 PD 출신인 그는 때때로 소극장을 통째로 빌려 영화를 상영하거나 홍대 앞 재즈클럽에서 낮시간 특별 공연을 기획하는 등 회원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를 연출하기도 한다.

"우리 또래가 영화를 보거나 재즈를 들으러 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이렇게 회원들 만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면 다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김현씨)

청류회 회원들은 이 같은 자신들의 취미 활동이 침체된 문화예술계에 작은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특히 순수예술 쪽은 자기 돈 내고 보러 오는 사람이 드물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공연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우리 같은 사람이 늘어나면 국내 예술활동의 활성화에 꽤 도움이 될텐데요…."(이차옥씨)

신예리 기자 <shiny@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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