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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 언론 자체심의 제대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극적인 흥미를 유발할 여지가 많은 큰 사건들이 꼬리를 물수록 절실하게 생각되는 것이 언론사의 자체 심의기능의 강화 필요성이다.

이런 때가 되면 기사내용은 선정적으로 흐르면서 보도의 양도 불필요하게 많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속보기간이 길어지면서 공허할 정도로 시시콜콜한 내용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지난 열흘 동안도 바로 그런 시기였다.

공동여당간의 합당설 파동, 신창원 체포, 경기도지사 부부 수뢰사건에 해외에서 날아온 케네디 2세 비행기 추락사건까지 가세해 몇개 안되는 사건들이 지면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면서 독자들의 어젠더 (의제) 를 '통일' 해 버렸다.

온국민이 박찬호 선수가 던지는 야구공 방향에 일희일비하면서 IMF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언론이 환경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이번에도 경기도지사 부부의 사생활과 신창원의 일거수 일투족에 독자들의 정신이 팔리고 있던 사이에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밀려나 버렸다.

방송노조들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방송법 통과가 또다시 유예될 위기를 맞고 있었다.

검찰의 파업유도 사건이 특검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듯하다 위의 사건들에 밀려 독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검찰이 재빨리 자체수사를 시작해 버렸다.

중요한 문제들이 사안의 중대성에 걸맞게 이슈화되지 못한 것이다.

신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의 하나가 마비되었던 열흘간이었다.

미국의 로펌 (법률회사) 내에선 블루팀과 레드팀이 긴밀한 협조하에 일을 한다고 들었다.

블루팀은 사건처리를 맡은 팀이고 레드팀이란 블루팀의 전략과 준비상황을 점검하면서 철저한 비판의 기능을 하는 팀이다.

레드팀은 블루팀이 실수하지 않고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레드팀의 유능 정도에 따라 블루팀의 성공 확률도 달라진다고 한다.

국가라는 거대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당이 국정을 제대로 다스려 나가기 위해서는 건전야당이 키워져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문사에서 레드팀이나 야당의 역할에 비슷한 조직은 심의기구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역할이 미미하거나 전무한 것 같다.

물론 많은 신문사들은 외부 독자들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고, 중앙일보는 옴부즈맨 칼럼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외부의 비판기능은 일단 기사화된 후에나 작동하는 것이고 사전예방과 조율은 못하고 있다.

이번 일련의 사건보도에서도 내부의 사전심의기능이 살아 있었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많이 보였다.

경기도지사 부부 수뢰사건의 제목달기나 의제설정 방식이 한 예다.

이 사건은 전.현직 고위공무원, 은행간부, 정치인, 법조인들이 시달리고 있다는 이른바 '미결수 증후군' 이라는 사회병리 현상을 다시 자극한 사건이었다.

이 증후군이란 언제 무슨 스캔들이 터지고 무슨 리스트가 등장해서 감옥행을 하게 될는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공직자의 도덕 불감증만을 공격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정치와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병리현상 중의 하나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피의자의 화장문제나 수의의 허리사이즈, 수감층, 사생활 등 흥미위주로 지면을 할애했지 이런 사회적 현상을 다루지는 못했다.

며칠전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그의 칼럼에서 신창원 사건에 대한 언론의 의제설정 방식에 대해 공감가는 비판을 가했다.

'신창원 영웅 만들기' 에서 돌연 '신창원 죽이기' 로 급선회를 한 언론의 방식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중요하게 다뤄졌어야 할 의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정작 중앙일보가 그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같은 비판이 반영된 흔적은 잘 보이지 않았다.

구태의연한 방식의 심의기구가 아닌 막강하고 유능한 레드팀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

박명진 서울대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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