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확 달라진 오바마 ‘신 외교 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미국이 미얀마와 관계 개선을 위한 직접 대화를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커트 캠벨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미얀마 우 타웅 과학기술부 장관이 이끄는 대표단과 회동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28일 특별 브리핑에서 “(오바마 정부 출범 후) 7개월 동안 미얀마 정책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끝냈다”며 “미얀마와의 대화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캠벨 차관보는 이어 “미얀마는 최근 무대 뒤에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 1874호 이행과 관련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북한을 상대로 한 국제 제재에서 좀 더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하려는 미얀마의 의지가 (대화의) 요인이 됐다”고 전했다. 미얀마가 미국의 가장 시급한 현안에 대해 호응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미국도 이에 상응한 자세를 보인다는 의미다.

미-미얀마 접촉은 오바마 정부의 외교 문제 해결방식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명한 사례다. 미 정부는 1988년 이래 미얀마 군사 정부의 민주화 역행 조치, 인권 탄압, 북한 등 ‘위험 국가’와의 군사적 협조 등을 이유로 미얀마에 봉쇄에 가까운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해 왔다. 2008년 초에는 미 재무부가 미얀마 군사 정부 최고 지도자 탄 슈웨 장군 등 정권 실력자들과 그 가족, 그들과 밀착돼 무기 거래에 나선 기업가 등 30명의 미국 내 금융기관 자산을 동결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얀마 군사 정권은 장기간 가택 연금 중인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해 정치적 수감자를 석방하고 재야 지도자들과 대화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줄곧 묵살해 왔다. 테인 세인 미얀마 총리는 28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얀마 제재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면서도 수치 여사의 석방 요구는 거부했다.

그러다 북한 문제를 계기로 미국과 미얀마 관계가 대화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은 적과 대화하되 동맹국과 의견을 나눌 것”이라는 오바마 외교 원칙도 크게 작용했다. 조지 W 부시 전 정부는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국가에 대해선 고립 일변도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오바마는 직접 대화로 푸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캠벨 차관보는 “지금 바로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푸는 것은 그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단서는 붙였다. 그러나 “그들의 민주화 진전 조치에 따라 단계적으로 양국 관계를 진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해 관계 개선의 길을 열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접근 방식은 오바마 정부가 자신들이 정한 외교 원칙에 충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대북 접촉 방식도 유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가 군사정권 여부 등 해당 국가의 체제나 내부 상황에 개의치 않고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 여하에 따라 대화와 제재를 선택할 것이며, 현안에 대한 명백한 진전이 없을 경우 쉽게 해당국에 대한 압박을 푸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