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중국, 미국을 넘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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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을 앞둔 베이징 천안문 광장 양쪽으로 56개의 대형 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 기둥은 중국의 56개 민족을 의미한다. 천안문 광장은 건국 60주년을 맞아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베이징=김경빈 기자]

탱크, 미사일, 항공기, 그리고 수천 군인의 함성…. 위협감을 주기에 충분한 장면이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중국의 이 같은 위용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중국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서방 경제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졌음에도 중국 경제는 여전히 8% 이상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경제를 구한다는 ‘중국구세론(中國救世論)’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관리해야 할 나라’라는 말도 듣는다. ‘G2(미국·중국)’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건국 60주년 기념식은 그래서 더 드라마틱해 보인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 이는 사회주의 중국의 꿈이었다.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1950년대 말, 중국에는 ‘차오잉간메이(超英<8D76>美·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추격한다)’는 구호가 난무했었다.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다시 2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마오쩌둥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장밋빛 환상일 뿐이었다. 무리한 중공업 정책에 따른 산업마비, 때마침 불어닥친 가뭄 등이 겹치면서 경제는 파국을 맞게 된다. 그 후 3년 동안 3000만 명이 굶어 죽어야 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불가능할 것만 같던 마오의 ‘차오잉간메이’는 현실이 돼가고 있다. 중국 경제력(GDP기준)은 이미 2006년 영국을 따돌렸다. 지난해 중국의 GDP는 4조4016억 달러로 미국(14조 달러)과 일본(4조9237억 달러)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에 오를 전망이다. 이제 남은 건 미국뿐이다. 중국 언론은 “요즘 닷새 동안 중국이 창출하는 부(富)는 1952년의 연간 창출 총량과 맞먹는다”고 흥미롭게 비교한다. 서구 사회가 산업혁명 이후 300년간 한 일을 중국은 60년 만에 해치운 것이다.

중국 윈난(雲南)성 다리(大理)시 난젠(南澗)현 펑황차(鳳凰茶)공장에서 건국 60주년 기념으로 정부에 납품 할 보이차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세계 경제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 잡는 날’을 계산하기에 바쁘다. 중국사회과학원은 그 시기를 2018년으로 봤고,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는 2025년, 골드먼삭스는 2027년으로 예상했다. 시기는 각기 달랐지만 일치된 견해가 있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자’는 마오의 꿈을 ‘덩샤오핑의 후예’들이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어느덧 기회의 땅으로 등장했다. 베이징에서 만난 많은 미국인들은 "기회가 되면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말한다. 올여름 베이징의 한 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MIT 재학생 존 닐(20)은 “대학을 졸업하면 중국 금융가에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20대 중반의 미국인 미시모는 베이징에서 유학 컨설팅 업체를 창업했다. 미국인 볼먼(23·여)은 대학을 졸업한 2006년 베이징의 한 현대무용단에 입사했다. 그는 프로그램부 주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국은 뭔가를 시작하기에 아주 좋은 나라”라며 “내가 미국에 있었다면 링컨센터에서 표나 팔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엘리트급 미국인들이 중국을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다. 중국을 빠르게 발전하고, 기회가 많은 땅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지금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국채는 무려 80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달러 관리를 잘 하시오’라는 원자바오 총리의 질책을 들어야 할 처지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남미, 호주에 이르기까지 ‘차이나 달러’를 앞세워 자원을 쓸어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빠른 부상은 세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거나 영토·자원을 놓고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국가들의 입장에선 ‘위협감’마저 느낄 수 있다. 이들 국가가 느끼는 불안감의 근원은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이다. 중국 정부가 올 초 발표한 ‘2008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4178억 위안(약 83조5600억원)의 국방비를 사용했다. 2007년에 비해 17.5% 늘어난 수치다. 1988년 이후 20년간 두 자릿수 증가를 기록했다. 항공모함 제작도 멀지 않아 보인다.

주변을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성장, 그게 ‘차오잉간메이’의 꿈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중국의 오늘의 모습이다.

신중국의 나이 이제 ‘이순(耳順)’이다. 공자(孔子)가 말한 이순은 ‘소리가 귀로 들어와 마음과 통하기 때문에 거슬리는 바가 없기에 곧 그 이치를 깨닫는 경지’다. 세계가 오늘 중국에 바라는 건 바로 공자가 말한 이순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글=한우덕 기자·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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