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 호메로스 '오디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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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로마시대의 금욕주의 철학자가 행복의 기준을 욕망과 충족의 함수관계로 설명한 적이 있다.

스스로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는 꼭 로마의 금욕주의 철학자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의 삶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소위 '안분자족 (安分自足)' 에 머물러 인간적 삶의 실현을 포기하는 것까지도 올바른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물질적 풍요가 '인간' 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케 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성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같은 문제의식의 자락을 펼쳐주는 고전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라는 작품이다.

'오디세이' 는 '일리아드' 와 함께 호머가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영웅 (혹은 신) 들의 서사 (이야기) 다.

트로이 목마처럼 '일리아드' 가 전쟁 영웅들의 환희와 참혹함, 사랑과 분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오디세이' 는 전쟁에 참여한 영웅들이 귀향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모험의 서사시다.

전체 12장으로 구성된 이 서사시 중 관심을 끄는 것은 전쟁영웅 오디세이가 귀향하면서 겪은 모험담을 담은 9장부터.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고통과 좌절, 승리와 기쁨 등이 담겨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인간 정체성의 회복과 관련, 주목되는 부분은 귀향하는 도중 미모의 마법사 키르케가 살고 있는 섬에 감금돼 부하들이 모두 돼지로 변하는 대목이다.

카프카의 '변신' 을 연상케 하는 이 대목은 소외나 불평등을 의식하지 않고 고민없이 주어진 삶에 기계적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적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문제는 그같은 현대인의 삶이 과연 행복한가 하는 점. 물론 이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같은 삶을 넘어서려 애쓰는 한 많은 고통이 따른다.

어떤 평론가의 지적처럼 '오디세이' 의 이 대목은 현대인의 진정한 형벌은 몸이 돼지로 변신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직 인간의 의식을 지니는데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아를 상실할지언정 물질적 풍요속에 갇혀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망각한 인간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고통의 길을 가야할 것인가.

이같은 논제에 답하기 위해 나름대로 정돈된 인간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전개할 수 있는 논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동물' 로서의 인간성 실현이 과연 '욕망의 절제' 만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소극적 입장에서 논지를 전개할 수도 있고, '오디세이' 처럼 인간이기를 위한 실천에서 그 본질을 찾는 적극적 입장에서 논의를 이끌어갈 수도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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