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교사들이 '고구려사 왜곡 항의' 종묘서 삼보일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오후 세 시 종묘공원.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 150여명이 모여 있었다. 풍물패가 분위기를 띄우는 걸로 시작, 이마에 띠를 두른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격문을 읽고, 구호를 외치는 건 여느 집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현직 교사다. 그리고 멀리 제주도, 경상남도에서도 여기까지 온 목적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국학운동시민연합 소속 현직교사들의 민족사 공부 모임인 홍익 교사협의회 소속 교사들이다. 방학이지만 교사를 따라온 제자들, 교사인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과거를 망각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과거 식민사관,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 오염된 역사가 아닌 이 민족의 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라는 이들의 성명서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했다.

▶ 석고대죄 중인 홍익교사협의회 교사들

경북 안동 도산중학교 체육교사 전준식(41)씨는 "역사 왜곡 반대에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안동에서 이렇게 왔다"며 "문화제국주의다. 우리 역사를 가져가는 건 도둑질이다"라고 역설했다. "후손으로서 우리가 제대로 역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 땅의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역사를 가르치지 못한 것을 조상님께 참회하며 지금 저희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교사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석고대죄하며 울음을 삼키기까지 했다.

▶ 홍익교사협의회 교사들이 중국교과서 모형을 불태우고 있다.

석고대죄 중에 눈물을 뚝뚝 흘린 고미정(26.여.인천 구월초등학교 교사)씨는 "우리 뿌리가 없어지면 한일합방처럼 우리는 없어지는 거다. 할아버지를 빼앗기면 우린 고아다. 홍익교사협의회는 우리끼리 국학을 공부하던 모임이었지만 이제 펼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약한 민족은 역사를 지킬 수 없습니다. 이미 상고사를 잃은 우리가 이제 고구려사를 위협받고 있습니다"라는 참회문이 낭독되자 구경꾼들도 숙연해졌다. 이채경(38.여.출판사 근무) 씨는 "역사를 공부하는 인터넷 소모임에서 이런 집회가 있다고 이메일이 와서 근처 서점에 들르는 길에 일부러 찾았다"며 "사회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인 교사들이 석고대죄를 한다길래 어떻게들 하나 궁금하기도 했는데, 막상 이렇게 보니 가슴이 찡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삼보일배. 종묘공원에서 탑골공원까지는 600m에 불과하지만, 느릿하게 발걸음을 떼고 절을 하며 움직인 행렬은 40분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 삼보일배중인 홍익교사협의회 교사들

이를 지켜본 이모(64)씨는 기자를 붙잡고 "모임이 너무 작아. 이런 모임이 커야 해. 학자들은 왜 가만히 있나"라고 말했다. 탑골공원에 도착해 이들은 중국교과서 모형을 불태우는 화형식을 했다. "오늘 우리는 모형 교과서를 태웠지만 마음속에서는 잘못돼 있는 중국의 모든 교과서를 불태웠습니다"라며. 이들은 개학 후 중학교의 경우 사회 과목의 한 부분으로 돼 있는 국사 과목이 독립교과, 필수과목이 되도록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각 학교를 순회하며 고구려사 자료전을 열 계획이다. 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