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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현실 모르는 교육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고교생들 사이에 돌고 있는 미확인 소문 하나. 모 고교 1학년 필수과목인 국사 기말고사에 출제된 허무맹랑한 문제 내용이다.

다음 중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인사는. ①김구 ②이동녕 ③이동휘 ④클린턴 기자에게 웃지 못할 사연을 전한 교사는 "정말 출제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2002학년도 대입 개혁의 첫단추가 끼워질 고1 교실에 성적 올려주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 이라고 말했다.

C고 1학년의 실제 사례를 보자. 아이들이 까다로워하는 수학 기말고사에서 담당교사는 1백여개의 예상문제를 뽑아주고 그 중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했다.

숫자만 바꿔 문제를 내 학생 4분의 1이 90점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또다른 고교에서는 수학시험이 너무 어렵게 출제돼 학생.학부모들의 항의가 뒤따르자 2차 시험을 실시하기도 했다.

고1부터 절대평가제가 도입되면서 시험이 어렵다고 다시 치르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출제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가는 자기 제자들 대학 가는 길을 막는 훼방꾼이 될 수도 있는 기막힌 현실이다.

이러다가는 '수행평가' 때문에 과제에 찌들린 고1의 학력 수준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사실 언론은 올해 초 교육부가 학생부 개선안을 내놓았을 때부터 여러차례 성적 올려주기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나 몰라라 일관하던 교육부는 말썽이 나자 부랴부랴 "앞으로 일선 학교의 성적 잘주기를 철저히 단속하겠다" 고 엄포를 놓고 있다.

교육부는 96년 종합생활기록부 파동 때도 '1백점 주기' 소동을 겪고 상대평가제로 바꾼 경험이 있다.

결국 교육부는 과거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셈이다.

교육부는 학교와 교사들을 상대로 호통만 칠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각 대학들과 함께 엄격한 동석차 처리 규정 등 성적 담합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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