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파업부른 방송법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방송개혁위의 통합방송법안에 항의해 어제 새벽부터 KBS.MBC 두 방송사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법의 뒷받침이 없어 막대한 돈을 들여 쏘아 올린 위성통신이 공중에서 헛돌고 있지만 여야는 아직껏 논의의 가닥도 잡지 못한 채 법안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새 방송법안이 이토록 오랜 기간 헛돌고 파업으로까지 치닫는 것은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충돌이 워낙 첨예하기 때문이다.

여야나 방송사 관련자들 모두가 한발 물러서 대국적 견지에서 이 문제를 풀려 하지 않는다면 합의점 도출은 어렵다는 비관론에 빠진다.

서로가 발상전환을 해 통합방송법을 빨리 마련하자는 원칙 합의를 먼저 해야 한다.

언론학 관련 교수 81%가 새 방송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관련법이 없으니 공중파방송.위성방송.유선방송 모두가 헛돌고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두 방송사 노조는 파업을 중단해야 한다.

노사간 쟁점이 아닌 사항을 두고 파업한다는 것은 정부와의 힘겨루기나 자사 (自社) 이익을 챙기기 위한 압박용으로 비칠 수 있다.

만의 하나 국민의 방송인 공영방송을 노조 이익을 위해 중단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

그러나 노조가 주장하는 방송위원장.공영방송 사장 선출시의 인사청문회나 노사 동수 (同數) 편성위원회 구성은 방송의 정치적 입김 차단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라고 보고 긍정적 수용을 권한다.

두 방송사의 개별적 요구사항을 뺀다면 남는 것은 방송사의 위상과 방송위원 선출에 관한 문제다.

방송개혁위가 마련한 법안은 방송위원회가 정책권.인허가권.인사권을 장악하는 막강한 합의제 행정기구다.

그리고 방송위원 9명 중 최소한 7명은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고, 방송위원장은 국무회의에도 참석하는 사실상 또다른 행정부서장이 된다.

이래선 민간규제위원회가 될 수 없다는 게 야당과 노조의 반론이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방송의 정치적 중립과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에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당안은 방송의 정부 장악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방송과 전파는 상당 부분 국민의 재산에 속한다.

따라서 방송의 기본정책은 정부가 관장하는 게 마땅하다.

정책권은 정부에 넘기고 인사권.예결권.심의권을 방송위가 가진다면 방송위원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닌 인사들로 자연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과 저질방송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건강한 공영방송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감시.심의하는 기능을 방송위원회가 맡아야 방송의 질을 확보할 수 있다.

서로의 작은 이해를 고집하기보다는 큰 줄기에서 방송법에 접근해 헛도는 방송정책을 시급히 정착시켜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