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도전권 조훈현-유창혁 결승 대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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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신인들은 모두 숨을 죽였고 고대하던 이변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은 조훈현9단과 유창혁9단 두사람이 남았다. 그러나 12일 목진석4단이 5승무패의 조훈현9단을 흑불계로 격파한 것이 6전전승의 유창혁9단을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 줬다. 8인의 강자가 겨룬 왕위전 본선리그서 유9단은 6연승, 조9단은 5승1패. 두 기사는 오는 19일 도전권을 놓고 한판승부를 펼친다. 만약 조9단이 승리하면 재대결로 승부를 가린다.

서봉수9단은 올해 왕위전을 재기의 무대로 삼아 온몸을 던지는 투혼을 보였으나 씁쓸한 좌절을 맞봐야했다. 첫판에 유창혁9단에게 대역전패를 당한 것이 너무 큰 상처가 되어 끝내 4승3패로 도전권에서 물러나고 만 것이다.

중견 강호 임선근9단이 6전6패의 치욕을 당한 것은 의외였다. 복병 최규병9단은 조훈현9단을 거의 다 잡았다가 놓쳤다. 이 한판이 조9단에겐 행운이 되었다. 최9단은 2승4패로 시드마저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김승준6단.목진석4단.이세돌2단 등 막강 신예들도 올해 새롭게 전열을 정비한 조훈현 유창혁 두 강자 앞엔 바람앞의 촛불이었다. 특히 2년 연속 도전권을 놓고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목진석4단이 올해 2승4패로 크게 밀려버린 것은 의외였다. 그는 150수 언저리에서 일찍암치 돌을 던져버리곤 해서 정신적으로 과도기에 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금도 (飛禽島) 의 천재기사 이세돌2단이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던 기대도 산산조각이 났다. 힘은 정상권을 치고들어갈만 하나 주도면밀한 전략과 끈기에서 아직은 미달이란 판정이었다.

조훈현9단은 33년 역사의 왕위전에서 무려 13번을 우승했다. 82년부터 90년까지는 9연패의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91년, 제자 이창호9단에게 왕위 타이틀을 넘긴 뒤 몇번을 도전했으나 다시는 타이틀을 되찾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세계대회인 춘란배에서 이창호를 격파하고 우승하는등 노염 (老炎) 을 불태우고 있다.

유창혁9단은 왕위전과 매우 특별한 인연을 갖고있다. 그는 92년에 이창호9단을 4대3으로 꺾고 왕위를 차지했다. 그리고는 이후 '전타이틀획득' 을 노리는 이9단으로부터 최대타이틀인 왕위를 연속 방어하여 4연패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단 하나의 타이틀이었지만 빛나는 타이틀이었다.

이9단은 끝내 천하통일에 실패했고 '최대타이틀을 갖지못한 일인자' 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했다. 유9단은 올해 날카로운 기세로 85%의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후지쓰배세계대회 결승에도 진출하는등 전성기의 기량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운도 따르고있다.

도전자결정전은 두장의 카드를 지닌 유9단쪽이 크게 우세하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대전적은 조9단이 93전53승1무39패 (승률 57%) 로 앞서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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