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아마추어적 발상 '연봉 위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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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프로농구 SBS 김정태 사무국장은 연봉협상 시즌인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최근 선수 대부분이 "지난 시즌 성적이 나빠 협상할 면목이 없다" 며 구단측에 다음 시즌 연봉을 '백지 위임' 했기 때문이다.

처음 김국장은 선수들의 백지위임을 '백의종군' 결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막상 연봉을 책정할 시기가 되자 백지위임은 "연봉을 최소한 동결해 달라" 는 선수들의 압력으로 다가왔다.

백지위임이란 배수진을 치고 구단을 압박하는 고단수라는 사실을 깨달은 김국장은 "아직 우리 선수들의 사고방식은 아마추어" 라고 개탄한다. 백지위임이야말로 프로 선수답지 못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나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허재를 비롯한 간판선수 몇몇이 "알아서 하라" 며 계약서를 맡겼기 때문이다. "알아서" 는 물론 "알아서 후하게 달라" 는 위협에 가깝다.

구단은 선수의 성적에 따라 연봉을 정해야 한다. 지난해 SBS가 아무리 부진했어도 선수 개개인의 성적에 따라 올려줄 수도, 깎을 수도 있다. 백지위임에는 감정에 호소해 이 원칙을 비켜가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셈이다.

아무리 미화해도 백지위임은 프로답지 못하다. 내놓고 손을 벌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정서지만 돈 앞에서 당당하기 전에는 진짜 프로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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