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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 복합 '위험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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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 숱한 대형 참사를 겪고도 여전히 우리는 언제 머리 위 천장이 무너져내릴지, 어느 순간에 발밑이 푹 내려앉을지 모르는 원초적 위험 속에 살고 있다.

씨랜드 화재 참사는 그것을 거듭 인식시켜 준 사건이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씨랜드 화재 역시 그동안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대형 건설사고와 맥을 같이하는 사건임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이윤을 키우기 위한 설계 및 용도변경, 부실한 시공, 눈가림식 안전시설, 그리고 그런 불법 및 편법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준 행정당국…. 마치 과거 사건의 녹음테이프를 다시 듣는 것처럼 모든 것이 거의 똑같다.

왜 이럴까. 왜 그렇게 자주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전략이 예나 이제나 똑같기 때문이다.

큰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지적됐듯이 우리 사회는 그동안 성장지상주의에 의한 속도전을 지속해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압축성장을 이룩해냈다.

그러나 그 성장은 마치 씨랜드 어린이 수련원 건물이 겉의 번드르르한 목재장식을 뜯어내고 보니 컨테이너 박스를 짜맞춰 지은 날림 건물이었던 것처럼 속에는 부실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린 겉껍데기의 성장이었다.

우리는 그런 급속한 성장일변도의 발전전략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사고가 나면 늘 몇몇 개인에게만 책임을 추궁하고 말 뿐 사회구조나 전략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 사고가 당장 내일이라도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오늘을 따라잡는 게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며 부실과 위험은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필요악이라면 우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회발전의 목표로 삼고 있는 선진국 자체가 오늘날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 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의한 산업현대화가 커다란 물질적 혜택을 제공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핵위험.환경오염.생태위기와 같은 산업화의 부작용들이 해가 갈수록 그동안의 성과를 무색케 하는 위험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벨기에에서 발생해 우리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이옥신 파동은 선진국이란 게 결코 우리들의 행복을 실현해줄 이상향은 아님을 잘 일러주고 있다.

우리와 선진국간의 시간적 격차는 30년쯤으로 가늠되고 있는데 그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30년이나 걸려 도달한 사회의 모습이 고작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선진사회라면 우리의 사회발전 전략은 수정돼야 마땅할 것이다.

선진국들 자체 내에서는 요즘 그동안의 발전전략에 관한 반성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의 '위험사회' 란 화두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자연환경을 정복함으로써 외형적으로는 큰 성장을 이룩했지만 동시에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위험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위험과 안전' 을 사회발전 전략의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발자 (後發者) 의 큰 이점은 먼저 간 자의 발길을 살펴 그 잘못을 피해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선진국들이 저지른 잘못을 우리가 되풀이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부실과 비리와 같은 후진적 요인에 의한 위험 뿐만이 아니라 일각에서는 선진사회가 겪고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같은 위험도 함께 겪고 있는 복합적인 '위험사회' 다.

돼지고기 속의 다이옥신을 문제삼지만 농촌에서 소각되고 있는 폐비닐에선 그보다 수천배의 다이옥신이 배출되고 있으며,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말하지만 우리 원전도 끊임없이 사고를 내고 있다.

또 시화호와 해양오염과 같은 환경문제.생태문제는 서구사회가 직면한 위험보다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나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방적인 성장정책으로 위험을 계속해 확대재생산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사회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발전전략도 달리해야 한다.

대통령제냐, 내각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낱 정치의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한 정권이 운명을 걸고 고민해야 할 것은 내각제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미래상이 무엇이며 그를 위해선 우리 사회의 발전전략이 어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여전히 딴청만 부리고 있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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