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도 의혹의 시선] '재벌 때리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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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진그룹을 비롯한 22개 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재계에 일파만파 (一波萬波) 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세청은 일단 "특별세무조사는 한진그룹에 국한된다" 고 30일 공식 확인했다.

한진그룹 5개사를 제외한 SK그룹.보광그룹.세계일보 등 17개사는 통상적인 일반세무조사 대상이라는 것이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사업장을 불시에 급습해 장부를 예치하는 특별세무조사와 세무조사 계획을 사전에 통보해주는 일반세무조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 고 강조했다.

이번 세무조사 바람은 올 초부터 불기 시작했다.

지난 97년부터 가동된 국세통합전산망 (TIS)에 전국민과 법인의 재산변동.과세자료가 충분히 축적돼 올해부터는 대대적인 불성실 신고 조사가 가능하다고 예고했었다.

한진그룹의 경우도 지난 3월 법인세 신고 직후 TIS를 활용해 외환거래가 많아 환차익을 입었거나 호황업종인데도 법인세액은 줄어드는 등 불성실신고 혐의가 있는 5백개 기업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혐의가 포착됐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 많은 기업 중에 "하필 한진그룹이냐" 는 점에 의혹의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직접 나서 세무조사 기업 수를 22개라고 숫자까지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는 다분히 한진그룹 세무조사를 계기로 재계 전반에 나돌고 있는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 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진그룹의 특별세무조사가 결코 표적조사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안정남 (安正男) 국세청장은 "대통령께서 특정 기업에 대해 어떤 내용도 주문하신 적이 없다" 고 누누이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진그룹의 주력기업인 대한항공이 세무조사 결과에 따라 타격을 받을 경우 경쟁기업인 아시아나항공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고, 아시아나항공의 지역기반이 집권당인 국민회의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밖에 경제가 겨우 회복단계에 들어선 시점에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집권세력이 대규모 세무조사에 나선 배경을 놓고도 '경제외적' 인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즉 '재벌 때리기' 를 통해 구조조정뿐 아니라 그동안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던 '중하류층 달래기' 를 함께 겨냥하고 있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訪美) 를 앞두고 재벌 구조조정의 가시적 성과를 과시하려는 정부의 밀어내기 전략이란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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