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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 지원책 겉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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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국내 시행 중인 미술 분야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 좀더 체계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단순히 작업실을 제공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작가 발굴.양성에 초점을 둔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추진하고 문예진흥원이 후원해 강화와 논산에 마련한 미술 작가들을 위한 폐교 활용 스튜디오가 최근 지방자치단체로 관리 위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지적을 반증하는 한 예다.

관리 위탁의 이유는 문예진흥원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인력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물론 지자체로 업무가 넘어가더라도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작가에게 작업실을 준다는 점은 여전히 의미가 있지만, 미술계에선 "전문가가 관리해야 할 프로그램이 지자체에 넘어가면 단순히 작업실만 쓰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문예진흥원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 이 폐교 활용 스튜디오는 역시 폐교 부지를 불하받아 만든 미국의 유명 비영리 갤러리 P.S.1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P.S.1은 세계 각국 작가들을 선발,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1년에 3~4회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통해 작업 결과를 공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전시를 열어주는 것은 물론이다. 전문가가 디렉터를 맡아 작가 선정.작업.전시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면서 '뽑히는 것만 해도 영광인' 국제적인 상품으로 키워낸 성공 사례다.

'보따리' 로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전에 초대받았던 설치미술가 김수자씨가 이 프로그램 수혜를 계기로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게 된 대표적 경우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제도는 삼성문화재단과 가나아트센터가 파리 예술공동체 (CITE INTERNATIONALE DES ARTS)에 작업실을 임대, 1회에 1명 작가들을 뽑아 보내고 있는 정도다.

파리에서 작업실을 공짜로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지원자는 많지 않다. 우선 평균 6개월에서 1년이라는 짧은 체류를 위해 외국으로 훌쩍 떠날 수 있으려면 어지간히 생활이 안정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

따라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작가가 해외 연수 식으로 이용하게 돼 애초 취지와 어긋나게 된다. 항공료.생활비 등 창작비가 지원되지 않는 프로그램은 "좋은 경험 했다" 는 수준에서 그치게 된다는 얘기다.

지난달 설립된 고암 이응노 기념사업회 (회장 윤범모) 는 이런 이유로 고민 중이다. 여기서는 후진 양성을 목표로 내년부터 파리 소재 고암 작업실을 젊은 작가들에게 무상대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년에 3~4명 창작자뿐 아니라 평론가를 포함시키고 전시도 열어주는 등 기존 제도에서 한발 나아가긴 했지만 창작비 지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황.

한 전문가는 "작가를 키워 국제 무대에 소개시키는 것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인 프로그램 수립이 아쉽다" 며 "많은 이에게 혜택을 주는 것도 좋지만 집중적.실질적 지원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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