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연과 딸 은서의 smile hom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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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가까운 사이일수록 구구절절 사랑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법. 탤런트 김보연 역시 그랬다. 미국에 있는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기를 20여 년. 살가운 애정 표현보다 잔소리를 더 많이 했던 건 곁에서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의 고육지책이었다. 6개월의 서울살이를 마친 딸 은서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마주 앉은 모녀는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김보연과 딸 은서의 Smile Home


그녀는 엄격한 엄마였다. 이혼 후 생계를 위해 두 아이를 미국에 있는 친정엄마와 동생에게 맡기고 한국에서 연기 활동을 하다보니 혹여 아이들이 부모 없는 티가 나지 않을까 염려한 것도 있었다.

구기동 두 번째 빌라 오픈하던 날

집은 모름지기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닮는 법이다. 누군가를 의식하여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반영한 삶의 공간인 때문이다. 단순한 취향을 넘어서 디테일하게는 그 사람의 성격이며 행동 패턴까지 짐작할 수 있으니 집이란 참으로 정직한 공간인 듯싶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최근 이사 후 새 단장을 마치자마자 『프리미엄 여성중앙』을 초대해 준 탤런트 김보연. 지난 2년간 각별한 친분이 있는 탤런트 김영애와 한 지붕 살이를 했던 그녀는 얼마 전 그곳에서 채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북한산 자락 서울 종로구 구기동 언덕에 위치한 김보연.전노민 부부의 두 번째 빌라. 처음 구기동 땅을 밟은 후 자연을 닮은 이곳에 마음을 뺏겨 좀처럼 이 동네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까다롭지 않은 부부가 꼼꼼히 따져 고른 새 빌라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과연 그러할 만했다. 창밖으로는 초록이 지천이고 넓은 창을 통해 햇살이 넉넉히 드는 집. 복층으로 된 빌라의 아래층은 그늘이 드리워져 그야말로 산속에 와 있는 듯 한여름 뙤약볕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그뿐이랴. 대문을 나서면 청량한 북한산 공기가 코를 자극하고, 남들이 먼 길 달려와 오르는 북한산을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게다가 구기동으로 터를 옮긴 후 하는 일마다 잘되고 있으니 인연이지 싶다.

이전 집과는 다른 듯 비슷한 분위기. 이사를 할 때마다 살림을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집 안 분위기를 바꾼 팔할은 집주인의 감각과 센스 덕분이다. 가구와 소품의 배치를 바꾸고, 큰돈 들이지 않는 사소한 변화를 꾀해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 것. 동서양, 신구의 조화를 이룬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을 선호하는 안주인의 성향은 새 빌라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자개 마니아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개 테이블과 자개장이 유럽식 가구 및 소품들과 어우러져 있고, 한식으로 꾸며놓은 다도 공간이 지극히 모던하고 심플한 이 집의 현대적 분위기와도 제법 어울린다.

“제가 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사 모은 가구며 소품들이 엄청나죠. 이번에 이삿짐을 꾸리며 보니 정말 많긴 많더라고요(웃음). 손때 묻고 추억이 서린 물건들이라 더 애정이 가요.”

특별히 힘을 쏟은 공간은 거실과 아래층에 위치한 남편의 ‘아방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공간인 거실은 집에서 가장 편안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김보연의 지론에 따라 창밖 풍경을 그대로 살리면서 군더더기 없이 안락한 공간으로 태어났다. 거실에서 연결된 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남편 전노민의 서재가 딸린 미니 응접실과 만난다.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인 부부에게도 독립된 공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편을 위해 마련한, 아내의 배려가 녹아 있는 공간이다.

큰딸 은서의 방도 딸의 취향을 고려해 새롭게 꾸몄다. 세련되면서도 아기자기한 소녀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분위기. 당연히 은서는 제 방이 가장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서울에, 그것도 엄마와 함께 사는 집에 제 방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운 눈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에서 나고 자라 20년 넘게 엄마와 떨어져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늘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픈 딸 Do you love me?

모녀를 나란히 앉혀놓으니 마치 엄마의 과거와 딸의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사람들이 ‘엄마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면 기분 좋다는 은서. 옆에 있던 김보연이 “내가 좀 더 낫지”라고 하자 ‘공주병 엄마’라고 맞받아치면서도 싫지 않은 내색이다.

뉴욕 시라큐스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는 딸 은서는 진로에 대한 고민과 한국어 공부 등을 위해 한 학기를 휴학하고 6개월간 서울에 머물러왔다. 새 빌라로 이사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이별을 앞두고 있었지만, 모녀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딸을 배웅하며 공항에서 눈물짓는 엄마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는 순간 들려온 김보연의 단호한 한마디, “배웅은 무슨!”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혼자 비행기를 타게 했어요. 나랑 같이 서울에 들어올 일이 있어도 일주일 간격을 두고 나중에 혼자 오게 했죠. 세상은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거든요. 처음엔 당연히 무서워하죠. 하지만 한 번 경험하고 나면 그 후부터는 쉬워요. 그렇게 키웠더니 애가 자신감이 있어요. 은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혼자 서울에 오는데 당연히 공항에 마중을 안 나갔죠. 그랬더니 방배동 집까지 물어물어 찾아왔더라고요.”

그녀는 두 딸 은서(22)와 은조(18)에게 누구보다 엄격한 엄마였다. 세상에 자기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만 그녀의 자식 사랑은 여느 엄마들과 좀 다른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바르게 잘 자라도록 이끌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혼 후 생계를 위해 두 아이를 미국에 있는 친정엄마와 동생에게 맡기고 한국에서 연기 활동을 하다보니 혹여 아이들이 부모 없는 티가 나지 않을까 염려한 것도 있었다.

“어디 가서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오히려 이를 악물고 엄하게 대했어요. 내 자식인데 왜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자식은 속으로 예뻐하고 겉으론 엄격하게 대하라’라고 했던 옛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아요. 저는 남편한테는 다정하게 표현해도 아이들에게는 냉정한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워서 그런지 오히려 다 큰 지금 어리광을 부려요. 은서가 요즘 매일같이 ‘Do you love
me?’라고 묻더라고요. 세상에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답하면 그제야 ‘OK’ 그래요. 항상 확인을 받고 싶은가 봐요. 그런 모습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죠. 솔직히 은서가 큰딸이다 보니 둘째 은조보다 더 엄격하게 대하게 되더라고요.”

자상한 아빠 전노민은 세 딸에게 인기만점

무엇보다 경제관념에 대해서는 철저히 ‘짠순이’ 엄마였다. 어렸을 적 아이들 장난감은 모두 지인들에게 물려받았거나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옷을 잘 사주지 않아 얼마 전에는 은서가 아빠 전노민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티셔츠 빌려 입고 나가도 돼?”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 일로 남편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돈의 귀함을 알아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번은 김영애 언니가 저한테 은서에게 용돈 좀 주라고 하더라고요. 저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웠나 봐요. 오랫동안 잔소리를 해서 그런지 이젠 아이들도 절약이 몸에 배었어요. 얼마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은서에게 부잣집 딸이 택시 타고 다니지 그러냐고 했더니 은서가 대답하기를 ‘낭비잖아요’ 하더래요(웃음).”

함께 살았던 지난 6개월간도 엄마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화내지 마라, 성질이 나도 참아라,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게 오랜 세월 계속돼온 엄마의 주요 레퍼토리. 덕분에 두 딸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답지 않게 어른을 어려워할 줄 알고 자기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어른스럽고 현명한 아이들로 자랐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잠시 방황했던 은서는 그러나 엄마의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분명히 제가 잘못했는데 화도 안 내고 오히려 엄마가 잘 돌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은서.

“그게 제 진심이었어요. 아이를 탓하기보다 다 제 잘못인 것만 같더라고요. 미안하다는 제 한마디에 은서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그 후론 공부도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엄마에 비해 전노민은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아빠다. 용돈이 필요할 때도 한 번에 2만원 이상 주지 않는 엄마보다는 ‘넉넉한’ 아빠를 찾게 된다는 은서. 사실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못마땅했지만, 너무 행복해 보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전노민에게 프러포즈를 권했단다.

“아빠는 우리 앞에서도 엄마에게 한결같아요. 요즘 ‘선덕여왕’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평소에는 애교도 많고 애정 표현도 얼마나 잘하는데요. 오히려 엄마의 애정 표현이 약하죠.”

“남편이 아이들을 정말 좋아해요. 저는 좋아해도 아이들에게 표현하지 않는 편인데 남편은 좋아하면 좋아하는 만큼 그대로 드러내죠. 그래서 애들에게 인기가 좋아요(웃음).”

엄마의 재혼으로 두 가족이 한 가족이 되면서 은서에겐 막내 동생 은지가 생겼다. 이름까지 돌림자를 쓴 듯 비슷한 걸 보면 인연은 인연인 모양.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세 아이는 방학 때면 함께 어울려 지내며 돈독한 자매애를 쌓아가고 있다. 처음부터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가족이 된 아이들이 부부는 그저 고맙고 예쁘기만 하다.

“모든 일에는 다 타이밍이 있잖아요. 어쩌면 우리 부부가 뒤늦게 만났기 때문에 이렇게 잘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일찍 만났더라면 만날 싸우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눈빛만 봐도 상대방 기분이 어떤지 알고,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으면 풀어주려고 노력하면서 살죠. 은서도 남편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할 텐데…(웃음).”

안타깝게도 엄마의 마지막 멘트에 대한 은서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남자 보는 눈까지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엄마 뒤를 이어 연기자 데뷔를 권하는 사람들에게 ‘생각 없다’는 답을 남기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은서. 당분간 또 전화로 그리움을 달래야 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이라 특별했던 지난 6개월이 이들 모녀에게 큰 힘이 될 게다.

취재_박진영 기자 사진_문덕관(studio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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