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이런 식이면 금강산 못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금강산관광객 한명이 나흘째 북에 억류당하고 있다.

주부 관광객이 북의 환경감시원과 대화 도중 감시원이 "남한에서는 귀순자를 바로 잡아서 죽이지 않느냐" 고 묻자 관광객이 "남한으로 넘어온 북측 귀순자들이 잘 살고 있다" 고 답했다.

이런 유도성 질문에 대한 답을 트집잡아 북은 '모략요원' '귀순공작요원' 으로 몰아 귀환을 막고 있다.

서해사태.차관급회담 연기에 이은 관광객 억류사건을 보면서 금강산관광을 이대로 해야 할지를 새로 검토할 전기 (轉機)에 이르렀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분단의 벽을 낮추고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협력을 증진한다는 대전제 아래 출발한 것이 금강산관광이다.

북은 관광 대가로 월 2천5백만달러씩 6년간 9억4천만달러를 받고, 남에선 이산가족의 한을 풀면서 햇볕정책의 대표적 사업으로 꼽고 있는 것이 금강산관광이다.

지금 이 대전제와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우선 북측의 관광객 억류 이유가 너무나 황당하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관광길에 오른 가정주부의 말 한 마디를 트집잡아 공작원으로 몬다면 누가 수긍하고 누가 관광길에 오를 것인가.

이런 경우를 상정해서 신변보장과 무사귀환을 보장하는 각서와 계약서를 체결해놓았지만 북이 마음먹기에 따라 각서와 계약이 아무 소용이 없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언제든지 북이 관광객을 억류할 수 있다는 이런 선례를 남기는 한 더이상 금강산사업은 진행하기 어렵다.

억류가 풀리지 않을 경우, 북한체류 현대 직원들을 소환하고 관광선 출항을 금지한다는 정부와 현대측의 단호한 결정은 이번 사태를 제대로 본 대응이라고 평가한다.

먼저 북측은 비료 2만t이 늦었다고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말꼬투리를 잡아 관광객을 억류하는 식으로 대남교란작전을 펼 생각은 말아야 한다.

5월 현재 북에 송금된 관광대가가 1억5천만달러에 달한다.

비료가 우리의 성의 표시이듯 관광 대가 또한 북을 돕는다는 국민의 뜻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을 볼모로 해서 위기국면을 조성한다는 것은 북의 기본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

북이 억류 주부를 송환한다 해도 관광객 신변안전을 위한 확고한 제도적 보장은 이번 기회에 마련돼야 한다.

현재 관광객 신변안전보장은 남북 당국간 협정이 아니라 북의 당국과 남의 민간기업간에 맺어진 협정이다.

북이 이번 경우처럼 일방적으로 억류를 할 경우 문제를 풀어갈 당국간 창구가 없다.

지난 20일 현재 금강산관광객은 8만6천명을 넘었다.

조만간 외국인 관광도 시작된다.

수만명의 생명과 신변안전을 한 민간기업의 약정서에 의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북 당국이 만나 신변안전과 관광세칙에 따른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분명한 약속을 해야 한다.

이런 합의가 남북 당국간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금강산관광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분명한 입장과 단호한 의지를 차제에 정부는 보여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