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창조주는 눈이 멀었다 진화만이 존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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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시계공
원제 The Blind Watchmaker,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560쪽, 2만5000원

확장된 표현형
원제 The Extended Phenotype,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 555쪽, 1만9000원

과학서의 명저 반열에 오른지 꽤 되는 『눈 먼 시계공』은 10년 만에 다시 번역된 책. 1994년 번역 그룹 ‘과학세대’가 맡았던 것을 이번에는 이용철씨가 혼자 다시 작업했다. 이씨는 당시 김동광씨와 함께 이 책을 번역한 주인공인데 그의 재번역은 10년 사이에 국내 학계와 지식대중 사이에 진화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어쨌거나 진화론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책, 그러나 10년 전 번역인 데다 절판됐던 책을 온전한 상품으로 되살려낸 자체가 책임있는 출판행위로 평가할 만하다.

10년 새 독서시장의 변화도 흥미롭다. 과학 전문 출판사들이 꽤 생겨난 데다가 이제 과학서적은 아동서 다음으로 연 매출 성장률이 높은 장르로 자리잡았다. 마침 생물학의 스타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또 다른 명저 『확장된 표현형』도 보름 전에 선보여 좋은 읽을거리로 등장했지 않는가. 신장개업한 『눈 먼 시계공』은 일부 용어를 수정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예전 번역본에서 ‘다윈설’‘다위니즘’‘네오다위니즘’으로 벌여놓았던 용어를 ‘다윈주의’로 통일했다.

책 9장에서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이론을 ‘구분론’‘구분평형설’로 했던 것을 요즘 국내 학계의 보편적 용어인 ‘단속평형설’로 정리한 점도 눈에 띈다. 이들 외에 쉼표로 연결된 긴 문장을 짧게 줄이고 일부 오역을 바로 잡아 읽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그러면 이 책의 메시지는 뭘까. 한마디로 다윈 진화론에 대한 초강력 옹호다. 미국 사회에서 은근히 힘이 센 창조론, 혹은 얼치기 진화론 이해에 대항해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격정(저자의 표현이다)이 곳곳에 배어난다.

그런 의지가 책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본래 ‘시계공’이란 놀랄만하게 정교한 자연과 인간을 창조해낸 창조주에 대한 비유. 그 원조가 윌리엄 페일리였다. 도킨스가 그 창조주를 ‘눈이 멀었다’고 비꼬며 정면공박 하는 게 이 도전적인 책이다. 자연을 창조한 시계공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눈을 예로 들자면 그것은 철두철미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본래 단순하고 원시적이었던 기관은 자연선택의 점진적인 과정(진화)을 통해 고도의 복잡성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입문서는 아니니 밑줄을 쳐가며 꼼꼼히 읽어야 할 듯싶다. 그가 1976년에 펴낸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1993년 을유문화사에서 번역됨)가 대중을 위한 것이라면 이번에 번역된 『확장된 표현형』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 이후 벌어진 생물학 논쟁 속에서 정면돌파 카드로 뽑은 게 『확장된 표현형』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자연선택과 진화란 정확히 유전자 내부의 현상이고, 따라서 인간이란 유전자가 그 안에 몸을 담고 있는 껍데기 혹은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확장된 표현형』에서는 한 술 더 뜬다. 유전자의 활동 반경은 생물체 내부만이 아니고 생물체 바깥 세계에 대응하는 모든 행동양식까지 포함한다는 것이고, 이게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가설이다.

가령 수달이 나뭇가지를 엮어 댐을 만든다거나 새가 둥지를 틀고 거미가 집을 짓는 것도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다. 물론 댐을 만들고 집을 짓는 주체는 유전자다. 그렇다면 진화론을 끝까지 밀어붙인 결론인데, 이 책은 더 큰 논쟁을 일으켰다. 도킨스란 사람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공격이 대판 일었던 것이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니 이 두 권의 책을 도킨스의 라이벌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 하우스』(사이언스북스),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등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두 권 모두 명저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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